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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무밥은 되고 고구마 밥은 안 되고

by Aphraates 2015. 1. 27.

그저께는 갑자기 생각났다면서 무밥을 한 번 해 먹자고 했다.

주방 전권을 지고 있는 주방장이다.

그러나 메뉴 선택은 다른 방 전권을 쥐고 있는 어르신이 하는 것이 돌아가는 이치에 맞을 것이다.

어르신이 보리쌀 하나나 콩 하나도 안 들어 간 토실토실한 하얀 쌀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시와 다른 메뉴를 선택하기 위하여 사전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까닥스럽던 어르신도 식성이 많이 변했다.

잡곡밥이나 별미라고 하는 밥에 대해 전처럼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가끔 그런 밥을 먹을 기회가 되면 “그 것도 괜찮겠네” 하는 식으로 동의를 하기 때문에 어르신의 밥은 무조건 하얀 쌀밥이라는 등식은 100% 완벽하게 성립되진 않는다.

 

 

 

저녁에 달래 간장에 비벼 먹는 무밥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부드럽게 술술 잘도 들어갔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맛이 딱 들은 커다란 깍두기를 둬서너번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 때 그 시절 논산 훈련소 식사 시간이 생각났다.

짬밥 배식이 끝난 후에 조교가 눈을 부라리며 큰 목소리로 “지금부터 식사를 한다. 식사시간은 5분. 식사개시!” 하면 일제히 식사를 했는데 5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개중에는 식사를 다 하지 못 하고 아쉬워서 버르적거리는 고문관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의 훈병(訓兵)들은 5분의 반 그러니까, 2-3분이면 밥풀 하나나 국 한 모금 없이 뚝딱 먹어치우고는 5분이 될 때까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곤 했다.

지금 그랬다가는 나 엄마한테 간다고 숟가락 집어 던지고 부대 담 넘어 도망갈 병사들이 태반일 테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만 그럴 때가 있었다.

쾌쾌 묵은 이야기지만 지금 아이들이 편안하게 군대 생활을 하기까지는 어른들과 선배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밥도 늦어도 10분이면 끝나는 식습관인데 입에 넣자마자 꿀떡꿀떡 넘어가는 무밥 먹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고 빨랐다.

데보라도 소화가 잘되고 탈이 없다는 무밥은 걱정이 안 되는지 누가 안 쫓아오니 천천히 좀 먹으라는 소리를 안 하고 그 대신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잘 먹었느냐고 물어보면서 무밥은 금방 내려가니 속이 허전하면 다른 것을 해 줄 테니 얘기하라고 했다.

간단하게 때운 저녁의 무밥이었는데 쑥 잘 내려가기도 했고, 밤늦게 까지 허전하지도 않았다.

자주 먹을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무밥이 몸에 맞는다는 얘기다.

 

어제 점심은 고구마 밥이었다.

무밥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고구마 밥을 해먹기로 한 것이다.

후배님이 보내준 고구마가 남아 있었다.

생긴 것은 길쭉하니 맛없이 이상하게 생겼는데 종자가 좋은 것인지 잘 재배를 한 것인지 맛은 상당히 좋았다.

 

고구마 밥은 향이 있어서 달래간장보다는 그냥 양념간장이 좋을 것이라고 내 왔는데 밥 자체가 달작 지근하여 그 간장도 안 맞았다.

맨밥으로 먹으면서 김치 국물을 조금씩 먹으니 제 격이었다.

그저께의 무밥 먹는 속도보다는 조금 느리게 한 그릇 뚝딱 해 치우고는 잘 먹었다며 식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무밥 먹었을 때하고는 딴 판이었다.

속이 묵직하고 트림이 나왔다.

경험을 토대로 자체 진단을 해 보건데 그냥 내려갈 것이 아니었다.

조치를 해야 할 거 같아서 일단 따뜻한 물을 좀 마셨다.

맨손 체조와 가벼운 운동도 해 봤으나 호전될 기미가 안 보였다.

얼른 약장(藥欌) 문을 열고 비상약으로 박스 채로 있는 위를 보호해주고 소화를 촉진시킨다는 생위천인가 하는 약을 한 병 꺼내서 마셨다.

그리고는 전기담요를 켠 채로 따뜻하게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저녁나절이었지만 맑은 아침처럼 개운했다.

다시는 찾지 않을 고구마 밥으로 몸에 안 맞는다는 얘기다.

 

데보라가 미안해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로부터 무밥은 소화가 잘 되지만 고구마 밥은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어제 무밥처럼 맛있게 먹으려고 정성스럽게 한 고구마 밥인데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니라면서 이제는 쑥 내려갔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장마다 꼴뚜기이간디” 라고 중얼거리며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잘 된다고 해서, 잘 맞는다고 해서 항상 잘 되고, 잘 맞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 일 수도 있다.

잘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잘 안 맞고, 잘 안 되는 것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인데 그를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체감이 틀린 것이리라.

 

식량도 아끼고 속도 다스릴 겸 해서 한 끼니 걸러야 했다.

커피 한 잔을 마셔가면서 어느 구닥다리 인사가 쓴 고구마 밥에 대한 글로 어려웠던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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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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