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금봉이

by Aphraates 2015. 1. 28.

금봉아!

울고 넘는 박달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금봉이다.

어수룩한 듯 하면서도 친근감이 있다.

 

모두가 다 추억거리다.

지금은 울고 넘는 박달재가 아니다.

고개인 줄 도 모르는 것이 태반이고, 고개인 줄 아는 사람도 고개 초입에서 여기가 그 유명하던 박달재구나 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고개 밑으로 4차선 터널이 뚫려서 쌩쌩 달리는 길이 됐기 때문이다.

 

금봉이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박달재 사연과 금봉이가 사실이든 허구이든 그 자체를 큰 의미를 둘 것은 아니고 전해져 내려오는 금봉이에 대한 다정다감한 이미지가 좋다.

 

금봉이는 은퇴하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노(老) 신부님께서 박(朴) 가브리엘 형제님을 두고 부르시던 별칭이기도 하다.

장난 끼가 좀 서려 있다.

그러나 결코 얕잡아보거나 야유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스럽고 다정스러워서 그렇게 부르셨다.

시골 출신의 소탈한 신부님과 작은 개인 사업을 하는 형제님이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 일치가 잘 됐다.

박 형제님은 성당 가까이에서 산다.

신부님께서는 수시로 성당을 드나들면서 눈을 쓴다던가 청소를 하는 등 성당의 궂은일을 찾아 하는 그 형제님이 대견스러워서 “울고 넘는 박달재”의 금봉이처럼 친근하게 부르신 것이었다.

 

또 다른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박 형제님의 이름이 금봉이와 비슷한 금범이다.

신부님은 흘러간 가요에 등장하는 금봉이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셨을 것이다.

하나 눈만 뜨면 보이고 이름을 불러대는 이웃집 총각 같아서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부담이 없으시고 편안하셨던 것 같다.

듣는 금봉이도 그렇게 불리는 것이 싫지는 않아 금봉이라고 부르시면 신부님 또 왜 그러시느냐며 손을 잡고는 싱글벙글이었다.

 

그 가브리엘 형제님이 몹쓸 불치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동동거리며 성당과 집을 왔다 갔다 하던 모습을 본지도 오래 됐다.

병세가 극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오늘 레지오를 끝낸 후에 지난 주일에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으로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같은 팀 레지오 단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현대 의학을 총동원하고 좋다는 자연 요법은 다 해 봤지만 그 시기가 다가오자 젓가락처럼 마르고 종잇장처럼 창백해져 있는 상태로 누운 채 기도를 따라 하더란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가슴에 메어지는 듯 했다.

자식 둘은 다 여의었지만 아직 한창이다.

나보다도 연하이고, 이제 고생보따리 접고 오순도순 즐길 재밌게 살아갈 때인데 그렇게 됐으니 우리 박 형제님 불쌍해서 어쩌나.

뭘 한다 해도 인간 영역 밖의 일인 걸 용기를 잃지 말라는 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으니 답답하다.

 

그저 화해와 용서,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주시라고 의탁하며 기도드린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함도 못 내밀었다  (0) 2015.01.30
바지런하기도 하지  (0) 2015.01.28
무밥은 되고 고구마 밥은 안 되고  (0) 2015.01.27
장 & 이  (0) 2015.01.26
되긴 되네  (0) 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