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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불빛과 발걸음

by Aphraates 2015. 2. 6.

척 하면 알아채거나 장래를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진 게 아니다.

스치는 바람결이나 지나치는 말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감각(感覺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리 똘똘하고 예민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낌새와 오가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 무슨 일이 있다거나 어떻게 된다거나 하는 것을 예측할 수가 있다.

 

나는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좋아한다.

밤낮을 안 가리지만 번득거리는 여러 눈과 마주치는 여러 사람이 싫어서 주로 밤에 거사를 치르는데 그렇다고 야행성 올빼미는 아니다.

냄새를 맡는 사냥개나 먹이를 찾아 나는 하이에나도 아니고, 궁금한 것이 많아 몰래 훔쳐보는 염탐꾼이나 발품 팔아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하는 장사치도 아니니 초라하게 보인다고 해서 폄하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 물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거리 풍경을 돌아본다거나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실천하고자 깊은 생각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거니는 멋들어진 자세도 아니다.

 

특별한 사연이나 이유는 없다.

그저 그게 좋아 그러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고독하면서도 행복한 산책(散策)이다.

산책이라면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제 격이지만 주당이 청탁불문이듯이 문인도 그렇다.

 

새벽이나 밤처럼 어두울 때는 표 안 나게 사방팔방을 살펴보고, 아침저녁이나 한낮에는 눈치 채지 않게 하여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소리 새의 “여인” 이라는 노래서 나오는 창문과 같은 감정이입도 아니고, 정신 계몽 차원의 “깨진 유리창 이론”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기분과 상대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그만두기로 하고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안 좋은 일이 잘 풀려 좋은 일이 있으면 불빛도 훤하고 발걸음도 씩씩하지만 안 그러면 그 반대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면서 우선 지인들의 집을 바라본다.

불이 켜져있는가를 본다.

불이 켜져 있으면 불빛이 훤한가 덜 훤한가를 살핀다.

앞뒤 창문이 열려있는 지를 본다.

열려있으면 살포시 열렸는지 활짝 열렸는지를 살펴본다.

불이 훤하게 켜져 있고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 같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안 그러면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나도 어딘지 모르게 울적해진다.

출퇴근 시간이나 낮에는 지인들의 발걸음을 관심 있이 본다.

씩씩하게 총총 걸음을 하면 나도 힘이 나고, 박력 없이 늘적거리면 나도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불빛이나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인근 상가나 식당가, 빌딩가를 지나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위로 치켜뜨고 훔쳐보게 되는데 얼핏 봐도 잘 돌아가는 형국인지 잘 안 돌아가는 형국인지 대번 감이 잡힌다.

 

오늘은 나가지 못 했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계속하여 훤한 불빛들과 활기찬 발걸음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습이라면 나도 그 반열에 서는 것이니 원님 덕분에 나팔 부는 격이 되는 횡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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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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