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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첫 경험

by Aphraates 2015. 2. 9.

생각났던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 때 국선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로 배송하려는지 새벽부터 채반에 그득하도록 계란말이를 만들던 데보라가 받았다.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침부터 온 전화인데다가 전화 받는 데보라 목소리가 근심스럽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글 쓰던 것을 중지하고 앉아 있자 바로 데보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짜고짜로 안나가 시장 봐 오다가 바로 집 뒤에서 교통사고가 난 모양인데 빨리 차를 갖고 가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작은 방으로 가 옷을 입었고, 데보라는 뒤 따라오면서 전화할 때 들었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했다.

함께 집을 나와 아파트 입구에서 나는 지하로 가 차를 갖고 나올 테니 당신은 먼저 가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우라하였더니 대답할 새도 없이 뒤쪽으로 가버렸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 차 앞에 커다란 에쿠스가 정차 돼 있어 그를 미느라고 힘 꽤나 썼다.

아침 시간이 됐으면 차들을 빼낼 것이지 왜 이렇게 늦게까지 통로에 차를 방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할 새도 없었다.

간신히 통로를 확보하여 나가서 보니 바로 집 뒤 4거리에서 접촉사고가 나 있었다.

신호등 아래 도로 한 복판은 차 파편들로 지저분하고, 가장자리에는 제 멋대로 일그러지고 부서진 하얀 소형 방개 차 매달은 견인차가 경기장 출발선을 출발하려는 것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우선 사고를 당한 루시아씨한테 어디 다친데는 없느냐고 확인했다.

어디 부러지거나 터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온 몸이 뿌지지 하니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셨다.

손발을 흔들어 보라고 했더니 착하기도 하시지 잘 따라 하셨다.

그 정도면 불행 중 다행이니 몸을 계속 조금씩 움직이라면서 출동해 있는 보험회사 직원한테 사고처리는 잘 됐느냐고 물었더니 신호 위반인 상대 차량이 백 프로 과실을 인정했다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잠시 지나자 연락을 받은 자동차 서비스 회사의 데레사씨가 오셨다.

동계훈련 출발하는 듯한 복장을 한 것이 우스워서 나는 웬 전사가 출동한 줄 알았고 했더니 겨울에는 이러고 현장에 다녀야지 춥다고 하셨다.

데레사씨가 웬 일이냐고 물으시니 루시아씨가 다시 한 번 사고의 자초지종을 리바이벌하셨다.

사고 수습은 일단 되었으니 뒷마무리를 해야 했다.

차를 갖고 나온 나와 데레사씨가 역할 분담을 하였다.

데레사씨는 안나씨와 함께 시장 본 것을 싣고 성당으로 가시고, 나는 파랑새 데보라 자매님과 함께 루시아 환자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병원은 전에 갔었다는 유성 병원이었다.

가다가 무슨 액땜을 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며칠 전에도 박 세실리아 자매님을 비롯한 세 자매님도 교통사고를 당하여 둔산의 J병원에 입원중시라고 했더니 아파서 찡그리던 루시아 환자께서 귀가 솔깃한지 는 것이었다.

아름아름으로 전화번호를 알아 거기에 입원하신 자매님한테 이것저것을 물어보시고는 거기로 가겠다고 하시어 국군 휴양소 앞에서 차머리를 다시 둔산으로 돌렸다.

한시름 덜은 것 같아서 “좀 덜 멋지긴 하지만 갈마동 성당 자매님들 병원에서 단합대회 하시겠네요” 라고 하였더니 정말 그렇다며 웃으셨다.

 

둔산 병원에 도착하여 둬 시간에 걸쳐 검사와 진료를 하고는 병실이 비는 오후에 입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입원 전에 준비를 하고 취하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것은 처음이라며 첫 경험을 토로했다.

교통사고 환자를 픽업하여 데리고 다닌 것도 첫 경험이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말은 들었지만 그 병원에 가 본 것도 첫 경험이라고 했더니 루시아씨가 좋지 않은 경험을 하시게 해드렸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셨다.

전혀 신경 쓸 것 없다면서 다른 것들은 다들 알아서 하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라고 일렀다.

 

 

 

첫 경험은 빨리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있다.

반대로 첫 경험을 아예 안 하는 것이 좋은 것도 있다.

 

드라마를 잘 안 보지만 1990년대 후반에 열풍을 일으키던 배용준 주연의 드라마 제목이 첫 경험인 거 같아 찾아봤더니 그게 아니라 첫사랑이었다.

대신 첫 경험이라는 1930년대의 장편소설과 1970년대의 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팝송 첫인상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 Roberta Flac)과도 오버랩이 되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훤히 답이 나오는 그 정도의 첫 경험이었기에 다행이지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중상을 입은 환자를 픽업하는 복잡한 것이었다면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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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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