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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망설이지 말았어야 하는데

by Aphraates 2020. 9. 21.

보성 다원에 들렸을 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다원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다가 녹차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때렸다.

다른 것은 다 그저 그렇지만 그 거 하나는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찾은 것이다.

 

판매대 앞에서 둘이 서서 다원을 바라보며 다 먹어갈 즈음에 외국인 가족이 지나갔다.

외모나 피부로 볼 때 동남아 사람은 아니고 방글라다시나 파키스탄 지역 사람 같이 보였다.

간소복 차림에 가방은 물론이고 아무 것도 손에든 것이 없었다.

인근 공장, 농장, 어장 어디선가 근무하는 근로자 가족이 주일에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부부인 듯 두 어른과 함께 초등학교 중급 정도 되는 머슴애가 함께 다녔는데 아이는 놀러 온 것이 좋은지 사람들 없는 공간을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내려오다 보니 그 가족이 통행로 안쪽의 자그마한 정원 앞의 메타스퀘어 나무 아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는 역시 물이 조금 있는 정원의 연못을 비빙 돌면서 혼자 놀았다.

옛날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강제 징용을 당하거나 돈을 벌기 위하여 낯선 이국땅으로 가서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못 입으면서 곤궁한 삶을 살던 모습이 저랬을 것이다 하는 상상이 되는 것이었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그 가족을 자꾸 쳐다보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데보라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저 아이한테 뭣 좀 해 주고 싶어서. 그런데 그 흔해빠진 편의점도 안 보이고 자판기는 천 원짜리만 쓰게 돼 있네. 아이를 불러서 뭐 사 먹으라고 돈이라도 좀 줄까하고 혼잣말을 했다.

알아서 하라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 지도 모르고, 좀 나은 자의 오만과 허세인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망설이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가게나 식당 같은 곳에서 마주쳤으면 선뜻 그래도 괜찮겠지만 이미 행보가 달라진 상황에서 일을 만드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고 어설플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게 맘이 걸린다.

어제 저녁도 그렇고, 오늘 아침도 그렇다.

생각이 나서 해야 할 것은 이것저것 재면서 망설이지 말고 즉석에서 해결하라는 다짐을 하면서도 종종 망설이는 것은 결구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갈마동 글라라 회장님이 야산에서 넘어져 기부스를 한 것도 결국은 의욕은 넘치는데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이 원인이 아니겠냐는 푸란치스코 회장남 말씀이나 이야기를 나누던 교우님들 공감의 말씀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망설이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은 기도로 대신한다.

지금 와서 어제 다원에서 산책하던 외국인을 찾노라고 광고를 낼 수도 없고,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다시 다원에 간다는 것은 지난 버스가 수 백리는 갔을 텐데 뭐 하는 것이냐는 자책감이 더 들 것이니 맘을 접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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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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