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팍 샐 때가 있다.
보따리 쌌다가 풀어놓을 때 가 그중의 하나다.
신호만 울리면 총알처럼 튀어나가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일이 틀어지면 의기소침해진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해외 여행에 밤잠 설쳐가며 보따리를 싸놨는데 그 나라에서 갑자기 쿠데타가 발생하여 출입국이 금지됐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풀어제끼려면 짜증 날 일이다.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글씨의 달력에 표시해가면서까지 새집으로의 입주 날을 기다리며 짐을 하나하나 싸가는 데 본의 아니게 건설회사가 부도를 맞아 언제 들어갈지 몰라 다시 짐을 풀라치면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진다더니 억세게 재수 없다고 실망할 것이다.
보따리가 무슨 죄 있나.
그렇게 만든 사람과 여건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미당 선생이 휴전선 DMZ(비무장지대)의 임진강 가 종달새 GP에서 34개월 만기 제대 전역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 명령이 언제 내려올지도 예상된 지라 이제나저제나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8,18 판문점 도끼 사건이 발생했다.
최고등급의 비상이 걸렸다.
제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절대 명제였다.
제대하려고 틈틈이 싸놨던 따블빽을 풀어 완전군장을 꾸려 놓고 벙커 병영생활이 시작됐다.
남북 군사분계선인 임진강과 북쪽의 들판과 남쪽의 산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대 한 번 하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 와서 OOO이냐는 불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날벼락 날벼락 이런 날벼락이 없다면서 분주히 움직이는데 언제 갈지 모르는 고향과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완전 군장한 채로 밥 먹고, 잠자고, 작전 수행을 준비하면서 며칠이 지났다.
다행히 사태가 더 악화하진 않았다.
상대측에서 진솔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비상도 해제됐다.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 것은 누구 배가 더 불룩하냐며 내밀다가 누구 배 하나라도 터지면 양쪽 배 다시 결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당 선생도 다시 따블빽을 싸서 예정된 날짜에 제대하여 개구리 복을 입고 꿈에 그리던 고향 앞으로가 되었다.
2.28에 1932는 떠나갑니다.
2월 말이면 최종 도장을 찍고 대전으로 간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어댔다.
그런데 입이 방정이었는지 또 틀어졌다.
큰집에서 동의를 구하는 연락이 왔다.
정해진 그 날짜까지는 도저히 행정적인 마무리를 할 수 없으니 한 달 더 연장하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왔다.
말이 제의지 그렇게 하기는 곤란하다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큰집에서 알려왔는데 작은 집에서 망설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단박에 그렇겠노라고 큰소리로 복창했다.
강제 명령 형태의 강압이었지만 연장되는 것이 고역스럽진 않다.
오히려 고마운 일이어서 표정 관리를 해야 할 판이다.
보따리 쌌다가 다시 푸는 것은 아니다.
문지방 옆에 그대로 두고 한 달 이내의 기간을 더 살면 된다.
삼 년 전에 따뜻한 봄날에 따뜻한 남쪽 마을로 내려왔다가 삼 년하고도 한 달을 살고 역시 따뜻한 봄날에 따뜻해질 남북 중간 마을인 대전 본가로 귀가하게 됐다.
보따리 쌌다가 그대로 싸놓은 채로 살아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긴 하나 행복한 고민에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게임은 아니나 게임은 끝나봐야 안다는 것처럼 또는, 자신만만하거나 왠지 기가 죽는 시험과 인사발령일지라도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그 결과를 안다는 것처럼 느긋하고 편하게 여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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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