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文化洞)은 북새통이다.
병원은 대기실은 물론이고 복도에도 대기자들이 가득했다.
접수하고 안내를 하는 간호사 네 분은 개개인에게 설명하느라 목이 셀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호명되어 진료실로 들어가는 환자들은 채 3분도 안 돼 나오는 식으로 빠르게 순환되는 데도 순번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은 줄어들 줄 몰랐다.
말 그대로 만원사례였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불황을 모르고 더 활황인 대학 병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문화동의 큰길을 따라 걸었다.
옛 보급창 자리에 들어선 센트럴 파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2단지에 사시는 소(蘇) 후배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병원 쪽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내가 좀 걸어야겠다면서 집 앞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가다가 학암(鶴巖/鶴岩?) 교장 친구가 정년퇴임을 한 글꽃(문화)중학교도 지나쳤다.
보문산 쪽을 보니 그 넓던 충남대학교 캠퍼스는 대학 병원이 다 점령하여 각종 병동이 들어서 있었다.
캠퍼스가 유성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는 의대와 병원이 접수하여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다 보니 야금야금 다 먹은 것이었다.
허허벌판 언덕배기에 서 있던 미당 선생의 모교 충남공고(忠南工高)는 아파트와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쪽으로는 교육 관련 기관들이 이어져 있었다.
후배님을 만나 개인사와 감리 업무 대화를 나누면서 보문산 자락 아래 문화동 뒷길을 걸었다.
시원하게 뚫린 외곽 도로는 비교적 한가하였다.
그만큼 차들은 고속질주하고 있었다.
여기 어딘가 보문산 쪽으로 작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안 보인다고 하였더니 본 적이 없다면서 아마 도시가 형성되면서 메꾼 것 같다고 하셨다.
한밭 도서관을 지나 점심을 먹기 위하여 들어간 개성(開城) 만둣집은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만석이었다.
분위기도 수수하고, 단일 메뉴인 음식도 좋았다.
괜찮은 집 같다고 하였더니 가성비가 좋아 항상 만원이라고 하셨다.
산책하면서 본 문화동은 변두리 구도심권이면서도 곳곳이 북새통이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문화동 길이었다.
그리움과 추억이 가득한 동네 문화동이다.
미당 집에 갈 때 대흥동 차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던 도청-서대전-둔산(갈마)동-만년교-유성으로 이어지는 계룡로가 대전의 어디보다도 애착이 가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다.
서대전역 인근에서 후배님과 헤어지면서 잠시 망설였다.
지하철을 탈까, 택시를 탈까, 걸을까 하다가 바로 향촌 후문이 종점인 315번 시내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시내 거리를 보노라니 평안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으로 만둣국을 먹으면서 각 1병씩 한 맥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옛 기억에 취해 기분이 좋아 노선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향촌도 북새통이었다.
주방에 미나리, 오이, 파 상자 등등이 줄지어 있는 것이 무슨 큰 작업을 하는가 보다 하였는데 뭘 만들어 누구누구와 나누려 한다고 설명했다.
고향인 정산(定山) 농협 마크가 찍힌 미나리 상자를 가리키며 청양 미나리는 처음 본다며 고향 것이어서 그런지 더 좋고 싸 보인다고 싱글벙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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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