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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미소중일

by Aphraates 2022. 4. 13.

미소중일(美蘇中日).

그렇게 쓰고 부르면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무슨 근거로 해서 나라 순서를 그렇게 정한 것이냐며 혹시 사상 논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다른 의미는 없다.

예전 역사 시간에 그 순서대로 불렀고, 어떤 나를 맨 앞에 두고 맨 뒤에 두느냐는 내 맘이다.

또한 어떤 순서이든 간에 첨예한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맘에 꺼릴 것도 없다.

친미친일과 반미반일이나 친북용공과 반북반공 같은 예민하면서도 진부한 문제와 연결하려 한다면 그게 오히려 신경 말초적인 마타도어(Matador, 흑색선전)일 것이다.

 

재외 동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삼십여 년 전에 국외 출장을 다닐 때 경험한 것이다.

아픈 경험이어서 그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도 숙연해진다.

 

첫째는 일본 도쿄 연수 교육 시에 만났던 할머니 이야기다.

숙소로 정한 곳이 도쿄 북서 지역 교통의 요충 이케부쿠로(Ikebukuro , 池袋)역 인근이었다.

재일 교포인 중년 여인이 운영하는 실비집 같은 숙소였는데 손님은 대부분이 다 한국인 여행자나 학생이었다.

그 집에 식사를 포함하여 집안일을 하는 초로의 할머니가 계셨는데 주인장의 친정어머니였다.

하루는 그 노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야기하다가 일본에서 자수성가하신 것 같은데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사시지 왜 물설고 낯 서론 데다가 차별 대우가 심한 여기서 사시느냐고 안쓰럽게 말했다.

그랬더니 손사래를 쳤다.

한국에서 생각할 때 선입감이 안 좋아서 그렇지 실제는 아니라면서 국가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여온 격이어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둘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LA 출장 시에 만났던 사람들 얘기다.

일본 할머니한테 했던 대로 비슷한 얘기를 했고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영감님은 딸네 집에서 기거하시는 분으로 한국에 있을 때는 상류층이었던 것 같았다.

작고 초라하며 불안한 조국으로는 안 돌아갈 것이고, 잠시 들릴 생각도 없다고 하시어 놀랐다.

입국 시에 잠시 들린 LA 한인촌의 자그마한 호텔에서 서빙하는 국내 명문여대 출신의 중년 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배달의 민족이자 백의의 민족인 한민족의 정체성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으나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안정된 선진국과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었다.

 

셋째는 소련과 중국에 거주하는 재외 동포와 후손들이었다.

우리보다도 못 사는 축에 드는 두 나라에 출장과 여행을 갔을 때는 미국과 일본과는 결이 좀 달랐다.

상하이나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 살든, 백두산 가는 길 이도백하나 카스피해 인근 톨리야티에 사는 강제 이주민이나 조선족의 애절한 모습이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과 소련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구차하게 살고 있다면서 조국에 가고 싶어도 갈 길이 없다고 눈물 흘리는 데 이역만리 타향살이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하는 생각에 함께 눈물이 났다.

 

미당 선생은 재외 동포에 애긍심이 크다.

우리보다 더 잘 산다거나 못 산다거나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객지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정에 약한 것인지 머리가 덜 깬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가 낳고 자란 터전을 떠나 그것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는 것은 대단하고 독하다는 생각이다.

열강이라고 하는 미소중일에 갇혀 운신의 폭이 작은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그를 별로 탐탁스럽지 않게 여기면서도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야 하는 우리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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