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
그럼 그를 따르지 않으면 어떨까
안에 든 것도 없는데 지갑을 열라면 구걸하는 격이 될 것이다.
노년들은 소외당하고 대화가 부족하여 실어증에 걸릴 판인데 거기에다가 입까지 닫으라고 하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결국은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라는 이야기가 된다.
여닫는데 유연한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지갑을 여닫고, 입도 여닫아야지 일률적으로 무조건 여닫으라고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이 들면서 허황하게 주책을 부리면 안 되겠다.
나이 들수록 뭔가는 밖으로 내뿜으며 활력을 키우는 것도 안 좋아 보인다.
가는 세월과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하나 그게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자꾸 안으로 움츠러들고 담을 쌓는 모습이 늘어난다.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생각하는 것으로나 현상 유지를 하지 못 하거나 안 하여 한쪽으로 기운다는 방증이다.
자연스러운 변화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전에는 안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밖으로 나가기도 싫고, 누구를 만나거나 통화하기도 싫고, 뭘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뭐 재미있는 것도 없고, 지난 좋았던 시절도 무덤덤하게 여겨지고, 앞으로 뭘 하겠다는 계획도 없고, 뭘 좀 해보려면 잘 안 돼 귀찮고......, 아름답고 조용해야 할 황혼이 묵언의 벽면 수도를 하는 것처럼 멍때리기 내지는 구들장 짊어진 천덕꾸러기 신세로 서서히 기우는 것이나 아닌지 안타깝다.
날이 갈수록 배타적이고 옹고집으로 변모해가는 것도 슬픈 일이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맘이 무디어지는 것이다.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돼야 할 텐데 그게 아니고 날라리 방귀처럼 북북 거리기만 하지 남는 게 없다.
사소한 것을 갖고 심통을 부리거나 반대로 중요한 것을 방치한다거나 하는 것도 올바른 노년이 아닌데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너만 못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느냐며 호통을 친다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으니 매사에 자세를 낮춰야 한다며 너무 자학한다거나 다 온당치 않으니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어제는 sns와 관련하여 상반된 두 모습에 직면하여 생각을 좀 했다.
늙은 군인의 안타까운 심정에 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전은 아무리 요란스럽게 떠들고 의견을 피력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답답하다는 벌거둥이 친구의 모습이었고, 오후는 시도 때도 없이 빽빽거리는 카톡 소리가 지겹다며 꼭 필요한 것 이외는 삼가자는 동고동락한 OB의 모습이었다.
무한한 언론 자유나 제한된 언론 자유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답을 내지 못하는 시사 문제와도 유사한 것인데 어느 선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우문현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규제를 풀어야 하느냐 풀어서는 안 되느냐 하는 그린벨트(Green Belt, 녹색지대, 개발제한구역) 하고 비슷하여 정답이 없다.
달걀이 먼저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달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맞고, 닭이라고 하는 사람 얘기를 들어봐도 틀린 것이 없으니 현문현답을 구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전화라도 한 통화 더하고 카톡이라도 하나 더 날려야 할 처지인데 그런 게 귀찮고 성가시다며 문을 닫는 것도 좀 그렇고, 그런 전화나 카톡은 삼가야 할 처지인데 누구 염장 지르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대고 카톡을 날리는 것도 좀 그렇다.
선의가 악의로 되고, 악의가 선의로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 판단 기준이 난해하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의 고뇌보다 더 큰 것 같아 착잡하다.
그러나 아흔 아홉 마리의 울타리 속 양보다 한 마리의 길잃은 양을 걱정하고 찾는다는 말씀(요한복음 8.32)을 묵상한다.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고 거북하다면 문을 닫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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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