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모님 기일이었다.
집에 있으니 어지간하면 서울로 제사 지내러 갔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대전 쪽에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 쪽에서 코로나도 그렇고, 처남의 댁도 몸이 불편하고 해서 제사 대신에 약식으로 예를 표한다고 해서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에 저녁에 갈마동 본당에서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위하여 미사 봉헌을 했다.
정장을 하지 않고 금산에 갔다 온 평상복 차림으로 성당에 갔더니 신부님과 수녀님을 비롯한 많은 분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커플 잠바가 멋지다고 하며 웃으셨다.
그도 그럴 만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미사 봉헌을 할 때는 정장을 하는데 오늘은 간소복 차림으로 갔으니 그 모습이 낯설고 신기들 하셨을 것이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시는데 그 대답은 데보라가 어디를 갔다 오다가 시간이 늦어 그대로 성당에 왔기 때문에 그랬다고 대신했다.
미사 봉헌에서는 불쌍하고 구구절절한 이승을 뒤로 하고 가신 두 어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청하였다.
아울러 구만 아버지와 갓난 엄니와도 통하시고, 먼저 가신 조상님들과 모든 이와도 통하시어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나누는 자비를 베풀어주시라고 기도드렸다.
또한 당신들께서 걱정하실 이승의 자식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주시라고 청하면서 특별히, 장모님 내외분과 비슷한 삶을 사시고 계신 대전 정림동 미카엘 형제님의 어머니 여주 할머니를 생각해주시라고 청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데보라와 레지나와 루치아를 앞세우고 걸어오는데 정채봉 작가의 수필 “스무 살 어머니”가 생각났다.
젊은 어머니와 불쌍한 아들의 사랑을 그대로 나타낸 자전적인 수필을 읽으면서 밀려오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삼천포를 오가면서는 그 수필의 무대가 되는 순천 승주의 선암사 옆을 지나치면서는 늘 두 모자(母子)를 떠올리면서 몇 년 전에 갔던 그곳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저승의 모든 분, 평안하세요.
이승의 모든 이들이 당신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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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