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가족이 있다.
우리보단 띠 동갑 정도 연하의 부부로 알고 있다.
처음 입주했을 때 남매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때부터 죽 봐왔다.
동생인 딸은 작년에 결혼했고, 오빠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지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주 본다.
다복한 집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 집에 변고가 생겼다.
언젠가부터 부인이 안 보였다.
어렴풋이 들었지만 아직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로는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한 사유로 이혼해 여(女)는 나가고 남(男)이 살림하고 있단다.
남매가 중고등하교 다닐 때이니 한참 됐다.
그 집 가족들과 마주치면 어색하다.
집안 얘기는 입으로 껌뻑도 못하고 그냥 잘 계시느냐는 안부 인사만 나눈다.
쓰레기를 들고 나서는 짝 잃은 외기러기에 어두운 얼굴로 쓸쓸하게 다니는 어마 잃은 아이들을 보면 맘이 아프다.
어지간하면 애들을 봐서라도 재결합을 했을 텐데 아닌 것을 보면 그럴 수 없는 중대한 장애물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참 착하고 순한 집인데 이혼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독한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이 있으면 이혼도 있다.
상대성(相對性)이라기보다는 음양(陰陽)의 논리 같다.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는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 “여자는 태어나서 `3`번 칼을 간다”, “남자는 부인에게 `3`번 미안해 한다” 라는 소개 글이 있었는데 남녀이별과 관련이 있는 `3`번이었다.
증명된 정설인지 떠도는 가설인지 모르지만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혼은 싫다.
이혼이란 말조차도 금기시 하며 외면하고 싶다.
이혼한 당사자나 가족을 보면 그래선 안 된다고 말리고 싶다.
하느님이 맺어준 것을 인간이 함부로 풀지 못한다는 말씀을 위시하여 이혼은 안 된다고 가르치는 성경 말씀 때문만은 아니다.
소싯적부터 그런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차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서로가 사랑한다던 맹세를 저버리고 또, 사랑의 결정체인 자식을 놔두고 가정을 깨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독할지라도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옮겨가면서 별일 없었다는 듯이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물론 이혼을 아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혼을 싫어하긴 하나 불가피성을 일정 수준 인정하기도 한다.
자기 책임을 다하고 사리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오죽하면 남남이 되는 것을 넘어 철천지원수로 되겠는가 하는 동정심이 있다.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주변에도 이혼한 사람이 있다.
가족 중에도 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도시락 싸서 들고 다니면서 이혼은 안 된다고 말릴 수는 없지만 가까이하기는 싫다.
자신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참아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나에게는 절대로 이혼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은 못 한다.
누구에게 있어서 이혼은 필요악일 수도 있다.
개인사를 두고 다른 사람이 정당화나 평형화할 시킬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재혼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조금만 안 맞아도 너는 너고 나는 나라며 습관처럼 하는 이혼 후의 재혼은 아니다.
상처상부(喪妻喪夫)같은 경우에 한한다.
고인한테는 미안하지만 남은 자의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재혼에 부정적이지 않다.
청상과부나 만년 홀아비를 고집하여 열녀비로 길이 추앙받을 것을 강제하고 싶진 않다.
무감각하면서 너그러워진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거나 전보다 웃음꽃이 환하게 피는 것은 아니 될 일이어서 돌아가신 부모 앞에서는 효자도 불효자라고 통곡하는 것처럼 완전히 바뀐 가정 구도에 대해서 당연시하거나 자랑스러워할 것은 아니다.
이혼(離婚).
자랑은 아닐 것이다.
한데 그렇게 자랑해야 하는지 꿀밤이라도 주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만 했다면 공개적으로 언급을 회피하고 비밀스러웠으면 좋겠다.
경험을 유용하게 쓸 것도 아닌데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픈 곳을 찌르면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를 후벼파 더 아프고 덧나게 하는 것을 인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주목받는 연예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이라며 조심했으면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으면 자숙이 필요하다.
나는 죄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동네방네 알리며 광고할 일은 아는 것 같다.
서로 사랑했기에 이혼해야 했다는 궤변 같은 것도 없었으면 한다.
아픈 상처를 조용히 치유하는 모드가 좋을 것이다.
이혼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고, 재혼을 하니 제2의 인생을 새로 사는 것처럼 행복하다느니 하는 것은 하대 중의 하대 OO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삼자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그러니 헤어진 배우자나 자식이나 가족들이나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비치는지 헤아려 처신했으면 한다.
오래전에 이혼하고 열애 중이라며 진지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 모모 연예인을 보니 “예끼, 이 양반에 그러지 맙시다. 댁의 그 환한 모습 뒤에는 피눈물이 나는 모습도 보이니 자중자애합시다. 정 그게 어려우면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과 부둥켜안고 팔딱팔딱 뛰든지 하구려.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면이 없지 않겠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도 하오. 비난하는 것을 넘어 총리라도 한 방 쐈으면 하고 울화통이 치밀어오르는 면도 상당하니 그를 알고 나갑시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자랑이 아니련만, 좀 비판적으로 말하면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얼굴 바짝 쳐들고 당당하게 나오는 것인지 바람직스럽다 하긴 그렇다.
새로 시작하는 주초의 이른 새벽부터 머리가 혼란하다.
그래서 이혼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한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한데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나 난제인 이혼이기 때문이다.
혼돈 중에서 정돈을 하자면 결론은 이혼이 필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권장한다거나 축하한다거나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혼은 자랑은 아닐 것이라는데 방점을 찍는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되와 말 (0) | 2022.05.24 |
---|---|
부려 먹으니 좋으냐 (0) | 2022.05.23 |
별나기도 하다 (0) | 2022.05.22 |
아프지 말아요 (0) | 2022.05.21 |
비 사이로 피한 것은 아니고 (0) | 2022.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