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저기 갈마 아파트 이야기다.
공직에서 정년퇴임하여 집에 계신 영감님한테 마나님께서 이러셨단다.
“당신이 집에 계시어 밥도 같이 먹고, 집안일도 도와줘서 좋아요”라고 진솔하게 말했단다.
그러자 누워서 뒹굴뒹굴하던 양반이 가자미눈을 뜨고 한참 바라보더니 “그래! 부려 먹으니까 좋으냐” 일갈하고는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나가더란다.
마나님도 황당했단다.
뭐 빈말을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좋아서 그렇게 감사 겸 칭찬의 말을 한 것인데 그렇게 천장 받는소리를 할 줄은 몰랐단다.
영감님이 나가시고 마나님이 저 양반이 왜 저러시는지 곰곰 생각해봤단다.
그럴 만도 하겠더란다.
정년 60이면 일손을 놓기가 너무 일러서 대부분이 재취업을 하거나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든가 하는데 우리 집 양반은 하는 일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취미생활 할 것이나 여건도 안 된단다.
허구한 날 구들장 신세를 지다 보니 오늘은 뭐로 하루를 때울까 하는 생각조차도 잊어버리고 멍때리기를 하는데 마나님이 엉뚱한 소리를 하니 속이 편할 리가 없겠더란다.
그런 영감 뒷바라지하는 나는 뭐 속이 좋은 줄 아나 한번 들이받을까 하다가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는 고생을 하다가 퇴직을 하여 근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안쓰럽더란다.
그래서 갈 곳도 없이 도솔산이나 한 바퀴 돌고 돌아왔을 영감님이 저녁에 들어오자 장만한 아주에 술상을 봐가며 한잔하시라고 디밀었단다.
낮에 있었던 울화통 사건은 무슨 불문율이라도 지키듯이 입 밖에도 안 내고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나고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왔단다.
한참 된 이야기이니 나이가 늘어난 지금은 좋아지기보다는 안 좋아졌을 것이 뻔한데 어찌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한테 물어보면 그분의 근황을 바로 알 수 있겠지만 울분의 소주를 한 잔 나눌 사이도 아니니 궁금해 할 것도 없이 그저 다 아시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니 건강히 지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다.
그 이야기는 남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OB로서 잘 지내는 사람이든 잘 못 지내는 사람이든 누구라도 느끼고 겪어야 하는 아픔이자 당연지사일 것이다.
미당 선생은 바쁘다.
안 그래도 될 것을 억지로 만들어 그런 것이 아니라 면면을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연만하면서 그러는 것이 정상은 아니고, 건강에도 좋다고 할 수는 없어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소지가 더 크다는 것이다.
또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지금이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좋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를 감안하여 정성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5.1 칠갑산 KO 사건 이후로 몸을 사리느라고 아니, 속에서 허용칠 않아 5.20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각양각색의 회동에서 여차여차하여 괴로운 시련이니 양해해달라고 읍소하느라 욕봤지만 진정돼 가고 있어 언제 다시 재가동할 것인지 탐색 중인데 당장 내일 5, 24작전을 수행해야 하니 그런 것도 팔자소관인가 보다.
심신을 단련 중인데 말 물 딸기를 받쳐 들고 책상 앞으로 온 데보라가 세프서 해야 할 일에 필요한 준비물을 죽 열거하였다.
듣거나 말거나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걸 싱싱하고 실한 것으로 사야 하니 오정동 농수산 시장에 가자는 부탁이자 명령이었다.
삼천포에서는 출근하고 나면 혼자 살살 용궁시장에 다니면서 생선과 섬 나물들을 사 나르더니 여기서는 농수산 시장의 육지 푸성귀나 작물들로 바뀌었다.
엥겔지수가 높은 편이지만 실제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의반 정도나 될까 말까인 것 같은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맨날 만들어 댄다.
취미 삼아 연습으로 하는 것도 있고, 전문가적인 견지에서 신기하게 만드는 것도 있고, 촌사람 스타일인 D&A를 위한 것도 있는데 좋아서 하는 것이라서 질리지도 않단다.
신규 및 개정된 KEC(한국전기설비규정) 한 장을 숙독하고는 일어서면서 “갑시다” 라고 하였더니 어디 가느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주방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반백수의 픽업을 받아 청과 채소 도매시장 동으로 들어가더니 박스 열무와 박스 미나리를 들고 왔다.
고향 지역 부여와 청양 산이어서 그런지 값도 싸고, 야채도 싱싱하고 좋다면서 소고기 우거짓국과 상추쌈 속으로 쓸 거라고 설명을 하여 그러냐고 고개를 끄떡였다.
맛 들은 것 같던데 잘 먹는 수박이나 제일 좋은 것으로 하나 사다가 냉장고에 넣고 먹지 그러냐고 하였더니 서방님 속이 아직 덜 풀어진 것 같은데 혼자 먹자고 살 수는 없다면서 다음에 산다고 했다.
부려 먹어서 좋으냐.
영감님 맘에도 없는데 그렇게 큰소리 내지 마세요.
마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모신다는 것을 다 아시면서 한 번 질러보는 소리 같은데 나중에 후회가 될지도 모르니 맞는 것은 맞는 대로, 안 맞는 것은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알콩달콩 사시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고잖아요.
정 답답하시면 다른 칩거 백수 어른 호출하시어 거기 옆에 보은 순댓집에서 한 잔 기울이시고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노래 한 곡조 뽑아보세요.
저는 오늘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마꾼에게 짐꾼이 됐는데 화창한 날만큼이나 기분이 홀가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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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