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명동은 도시 외곽 한적한 야산지대였다.
수통골은 발길이 뜸한 숨겨진 계룡산 자락이었다.
그런데 야산회도(野山灰都)가 되었다.
푸르른 산이 회색 도시로 변해 가고 있다.
뽕밭이 바다가 되었듯이 변했다는 표현인 사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덕명골은 한밭대가 점령했다.
삼성동(현재 자이 아파트 자리)에서 대전산업대학원생으로 시작하여 덕명동 캠퍼스에서 석사 학위를 받던 해(1998?)에 본관과 학사(學舍) 몇 동으로 시작한 캠퍼스가 인근 지역을 야금야금 다 먹은 양상이다.
수통골은 버스도 안 다니던 외진 곳에서 백수 선생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로 자리매김을 하는가 싶더니 10여 년 전부터 급속히 발전하더니 지금은 몰라보게 변하고 등산객이나 산보객들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라서 몰래 숨어서 다니기가 불가능하게 됐다.
오늘 거기서 칠갑산 대전 아그들 모임을 했다.
다들 사정이 있어서 홍일점 하나에 청일점 둘로 합이 셋 달랑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개인 행사 때문에 지친 심신에 골골하면서도 참석을 약속한지라 참석했는데 공기 좋고, 산 좋고, 셋의 대화가 좋았다.
가뭄 탓인지 인파 탓인지 금수봉 빈계산에서 발원하여 내리는 계곡물은 영 아니었다.
모교 캠퍼스 정문을 기웃거리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함께 하던 대학과 대학원 학동(學童)들은 다 학노(學老)가 되어 일부를 빼고는 만나기조차도 힘들고, 은사 교수님들은 노학동들과 연배가 비슷한 젊은 교수님들조차도 다 정년퇴임을 하시어 문하생들과 함께 가끔 뵙는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유일하게 교류하시는 정도다.
갈마동에서 신부님으로 모시던 루까 신부님이 주임 신부님이신 덕명동 성당도 마당까지 들어가 성모상을 향해 성호(聖號)를 긋고는 영육 간에 건강하시라고 기도를 드렸다.
수통골 버스 종점 인근에 있는 대학원 문하생 김(金) 후배 회사 사옥을 바라보다가 길을 건너 문을 밀어봤지만 잠겨있었다.
토요일이니 닫혀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수통골까지 왔다가 그냥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고 스스로 서운할 것 같아서 그래 봤다.
혹시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어 사무실이 열려있으면 시간도 넉넉한지라 차 한잔하고 가면 좋다는 바람도 있었다.
향촌 쪽문 앞에서 104번 버스를 타고 정부청사-KAIST-충남대-유성장터-대전 현충원을 거쳐 한밭대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1시간 넘게 걸었다.
미당초등학교 8회 대전 동창회는 조촐하고, 수통골은 만원사례를 넘어 포화상태였다.
작은 냇물 화산천을 가운데로 하여 공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각종 음식점, 카페, 편의 시설, 오락시설 등등이 들어서 외롭게 서 있어 멀리서도 외롭게 보이던 도덕봉 가든과 유스 호텔이 가려서 잘 안 보이는 데다가 조금 보이는 것이 초라했다.
다 변하는데 우리라고 별 수 있겠는가.
누룽지 오리백숙 하나 시켰는데 떡을 쳤다.
다음 주 월요일에 대학병원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어서 주당 미당 선생도 조신하게 굴어야 했고, 차를 갖고 온 김(金)과 이(李)는 운짱인지라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나눌 수가 없었는데 서운친 않았다.
다음에는 정회원 친구도, 준회원을 자처하는 친구도 함께했으면 하는데 생각하고 사는 게 다 다르니 되는 대로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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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