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에서 근무할 때다.
하루는 우리보다 연배가 한참 위인 사람과 술자리를 같이 했다.
호형호제하는 지인이 만든 자리였는데 특별한 의제(議題)는 없었고 퇴근 후에 출출한 목을 축이는 그런 자리였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미당 선생이 형이라고 하는 분이 형이라고 부르는 다른 분과 함께 계셨다.
명함을 주고받아 보니 경찰서 수사 부서에 있는 K 경장님이셨다.
(이하존칭생략)
좀 이상했다.
저 정도 연세이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간부급 무궁화꽃 경위는 몰라도 무궁 이파리 세 개인 경사는 됐을 것 같은데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 순경 위의 경장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에 미당 선생이 30대 중반이었으니 그분은 50대는 됐던 것 같다.
인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고향 지역 토박이 경찰관이었다.
술이 거나한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여기 고향 부임이 군 제대하고 입사하여 첫 발령인데 선배님께서는 주로 어디서 근무하셨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고 빙그레 웃으시더니 다른 경찰서에도 잠깐잠깐 있었지만 주로 청양에서 근무했다면서 K 경장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맞장구치는 차원에서 셋이 함께 웃었지만 생각은 달랐다.
그거는 선배님이 속한 조직 경찰이나 관련자들이나 그렇지 경찰서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교통경찰이 호루라기 한 번만 불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안 맞는 것이다.
사복 차림의 K 경장이 불심 검문을 하면 아는 사람들이야 수고하신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겠지만 관계없는 사람들이야 멀쩡한 대낮에 경찰 흉내 내는 꼭지 덜떨어진 사람이라며 수군거리며 그냥 지나갈 것이다.
그런 소리 듣는 K 경장은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내기 바로 그 K 경장이라며 정말 모르겠느냐고 다그쳐봐야 그거는 댁의 얘기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괜한 헛수고하지 말고 댁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역으로 충고를 듣는다면 나 모르면 간첩이라고 큰소리치던 목소리가 개미 소리만 하여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갈마동 성당에 K 경장 시즌2가 나왔다.
여기서는 그때 그 시절 K 경장을 향해 그게 아니라고 했던 미당 선생이 장본인이 됐다.
갈마동 성당에서 미당 선생 아프라 아티스와 데보라를 모르면 이상하다.
“내가 북에서 내려왔수다” 하고 간첩이라 신분을 밝혀도 고개도 안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그렇다면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라고 할 정도로 별 의미가 없는 간첩을 비유로 소환하는 것은 몰라도 갈마동 신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데가 신자들을 다 훤히 아는 것은 아니나 갈마동 신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모르면 그들은 간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6.1 지방 선거 한 참 전이다.
미사 참례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신부님께서 간편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를 소개해 주시면서 이번에 뭔가 출마한다고 하셨다.
뭘 출마한다고 하셨느냐며 확인할 것도 없이 관심 없었지만 오신 손님을 냉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열심히 하시라는 덕담과 함께 악수하였다.
그게 전부였다.
다시 본 적이 없고,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분이 성당에 재등장하셨다.
우리가 앉는 맨 앞좌석 옆자리에 정장 차림으로 혼자 앉아 차분하게 미사 봉헌을 하고 계셨다.
그분과 인사도 나눴고, 비밀 투표도 했고, 갈마 사거리에 사방팔방에 나붙은 당선자와 낙선자들의 인사 플래카드도 있었지만 그런가 보다 했는데 비슷한 얼굴의 그 분이 바로 옆에 앉아 계신 것이었다.
좀 궁금했다.
두 번째 보는데도 감이 없었다.
다만 전보다는 좀 낯이 익다는 것뿐이었다.
저 양반이 누구이신데 미사 참례를 하고 계시는가.
새로 전입을 오셨나.
선거가 끝났으니 원래 집으로 이사한다고 작별 인사차 오셨나.
이런저런 경우를 상정해도 연결이 안 됐다.
궁금증은 성당 공지사항 시간에 풀렸다.
끝날 무렵에 신부님께서 풀어주셨다.
작년까지 행정 부시장으로 계시다가 그만두고 이번에 우리 서구 구청장으로 당선되신 OOO 대건 안드레아 형제님이시라고 소개하셨다.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후좌우를 향해 고개 숙여 절로 인사하셨다.
신자들은 박수를 쳤다.
신부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선거 전이나 선거 중에는 소개 안 하고 이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서 인사를 드리게 됐으니 양해해주시라고 부탁하셨다.
폐일언하고 미당 선생도 너무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비록 영세하신지 얼마 안 되고, 우리 성당 구역으로 이사하신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같은 본당 교우님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어느 성격의 간첩이 되었든 해당하는 분들과 성당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 묻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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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