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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점심

by Aphraates 2024. 4. 18.

직장인들은 점심을 잘 먹어야 한다고 한다.

의학이나 영양학은 학술적으로나 건강 문제를 거론할 것 없다.

겪어보니 사실 그랬다.

 

아침은 잘 먹기가 어렵다.

뭐라도 먹고 출근해야 한다며 마나님이 알뜰살뜰하게 챙겨도 잘 안 먹히는데 잠에서 덜 깬 마나님이 달걀부침에 빵이나 한 조각 먹고 가 돈 잘 벌어오라고 한다면 차라리 쓴 약을 먹는 편이 낫다.

 

저녁도 부실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갖자는 선거 구호가 아니더라도 일찍 들어가 푹 쉬면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그대로 놔두질 않는 게 현실이다.

대신 OT에 따른 외부 식사 또는 회식하는 게 보통이다.

그게 띄엄띄엄 어쩌다 한 번이면 뭔가 기대가 될 텐데 강제로 끌려가 사역하다시피 해야 하는 실정이라면 먹는 게 먹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 해 먹는 꼴이 되고 만다.

 

고로 점심을 잘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도 녹록지 않다.

구내식당이 집밥에 가장 가까워 가장 좋으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많은 식수 인원을 상대로 한지 보니 식단이 단조롭고, 낮은 가격으로 가성비를 맞추다 보니 갈수록 왜 이렇게 부실하냐는 불만이 인다.

그래도 구내식당이 있으면 다행이다.

구내식당이 없어 점심시간만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고, 가서 뭘 먹긴 먹었는데 영 양에 차지 않아 이러다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한다는 걱정이 된다.

 

남원살이 16개월 차다.

구내식당이 없어 오늘도 점심 찾아 삼만리다.

담당인 주 대리님도 점심때만 되면 고민일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군데 다녔다.

뼈다귀탕, 닭곰탕, 갈비탕과 육개장, 떡갈비, 중국집 여러 곳, 청국장, 비빔밥, 보리밥, 김치찌개, 한식 뷔페 집, 장어와 매운탕, 추어탕, 다슬기탕, 돼지국밥과 순댓국, 칼국수와 메밀국수와 국수와 냉면, 순두부, 생선회, 갈치조림, 닭볶음탕과 오리탕, 삼겹살과 소고기와 오리고기, 김밥과 떡볶이, 생선구이, 퓨전식당......, 남원 시내와 인근 지역 안 가본 데가 없다.

식당마다, 메뉴마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그래, 이 맛이야라고 감탄하는 집은 드물다.

입맛이 까다로운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식당 밥은 아무리 잘해도 거기서 거기인지라 집밥만 못 하여 자주 먹을 것은 아니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가파른 물가고에 따라 점심 풍경이 달라진단다.

입맛 같은 것을 얘기할 새도 없이 경제적으로 점심값이 부담되기 때문에 그렇단다.

 

그제는 인월의 산나물밥에 떡갈비 집이었다.

어제는 인월의 어탕 집이었다.

깊은 산속 마을에 어탕 집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꽤 유명한 집이다.

오래전 518 동지들과 왔을 때와는 맛이 다르고, 얼마 전에 부부 동반으로 일부러 들렸을 때도 예전 그 맛이 아니어서 조금은 서운했는데 오늘도 그저 그랬다.

손님들도 꽤 있었고, 함께 한 일행들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다음에 또 오자며 손뼉을 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식당 밥 체질이 아닌가 보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식당은 많다.

반면에 마땅치가 않다.

메뉴도 다양하다.

하나 손 가는 게 적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수도 없다.

개발해 봐야 얼마 안 가서 질릴 것은 뻔하고, 그 이유는 간사한 입 때문인데 입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를 좀 곯아봐야 알고, 삼겹살에 쇠주 한 잔이면 그만이라는 수더분함도 기려야 할 텐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으니 점심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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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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