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근무 시절이다.
하루는 고문관 꽈에 속하는 제대 말년 병장이 선임하사님한테 호된 꾸중을 들었다.
이례적이었다.
남북 대치 최일선인 비무장지대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
실탄과 수류탄을 휴대하고 곳곳에 클레이모어가 설치된 최전선이라서 항상 위험하다.
외부의 적 방어가 최우선이지만 불만과 갈등으로 표출되는 내부의 적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럴 때 군기가 항상 말썽이다.
전방은 군기가 세기도 하고 물렁물렁하기도 하다.
요령 있게 다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어 가능한 자극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지휘는 삼가려고 한다.
제대 장병은 예우하는 편이다.
할 거는 다른 병사들과 같이 하지만 짬밥 노하우가 있어 여유를 가진다.
전역을 얼마 안 앞둔 병사는 비교적 자유로운데 그런 김 병장한테 무던한 선임하사님이 화가 단단히 나셨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북한에서 뿌린 불온 선전물 삐라때문이었다.
전방 지역은 어디를 가도 북에서 날려 보낸 삐라가 많았다.
그런 걸 발견하면 무조건 주워서 현지 폐기하거나 상부에 보고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대부분이 그렇게 잘들 하고 있어 삐리 제거는 하나의 생활처럼 돼 있었다.
그런데 그 김 병장이 실수했다.
한눈에 쏙 들어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업되는 미인도를 수첩에 끼워서 다니다가 발각된 것이었다.
대남 심리전이 조금이나마 먹혀들어 간 것이었다.
사진 속의 미인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북에서 보낸 삐라였다.
자세히 보면 삐라 뒤나 구석에 깨알 같은 글씨로 선전·선동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은 다른 삐라와 마찬가지였다.
졸병들이 그런 짓을 하더라도 그러지 말라고 제재해야 할 고참이 오히려 그런 사진을 몰래 갖고 다니고 보면서 히죽거렸으니 군홧발로 정강이 안 까인 것이 다행이었다.
삐라 작전이 그렇게 효과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울 이북 전방 접경지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서울 이남 지역이나 후방 지역에는 그런 게 없었다.
아무리 계절풍을 이용한다 해도 멀리 가지 못하고 전방 지대에 떨어졌다.
지금처럼 수소와 특수 재질의 풍선을 이용한 성능 좋은(?) 삐라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 전방 인근에서 터져 살포된 것이었다.
삐라도 세월따라 진보되는가 보다.
삐라 운반 수단인 풍선도 멀리 날아가 남쪽 해안가에서까지 발견된단다.
누군가 배를 타고, 다니면서 뿌린 것은 아닐 것이다.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날려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적어도 400km 이상은 날아간 것이다.
삐라와 함께 떨어지는 내용물들도 업그레이드됐단다.
견물생심을 유발한다거나 이성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도 많아 혹 하여 넘어가는 경우가 있단다.
정반대의 내용물도 있단다.
날아온 풍선에서 쏟아지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오물이란다.
촌 아가씨 같은 사진을 찍어 보내봤자 통하지도 않고, 다른 묘한 심리전을 벌여도 별 관심이 없으므로 “옜다, 이거나 먹어라” 하고 뛰어난 기술로 오물 투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지 말라며 그게 무슨 짓이냐고 하자 별의별 악담을 다 하고 그 정도는 약과라며 아직 멀었다고 한다니 어찌 하오리까지다.
더 세게 나와야 할라나.
영화 황산벌에서처럼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신라 경상도 김유신 장군 부대 병사에 대응하여 백제 전라도 계백 장군 병사들이 초고도의 심리전으로 나오는 것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나올 수도 없고 그거참 영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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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