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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변압기

by Aphraates 2024. 9. 1.

미당 선생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다.

직군은 사무, 기술, 기능 중에서 기술이다.

직종은 전기다.

대분류하면 송변전이고, 중분류하면 변전소로 대변되는 변전(變電) 분야다.

 

주로 H/W에 속하는 변전 분야에 종사해왔다.

좋게 말하면 변전 전문가이고, 시쳇말로 하면 변전 쟁이다.

YB때도 그랬고, OB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발적이지도 않았고, 강제적이지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그리 흘러왔다.

 

오랫동안 종사해왔지만 얼치기 수준이다.

타고난 끼가 있는 꾼이 아니어서다.

원래 성향은 인문 사회계열의 문학도나 사학도다.

처음에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한 번 발을 들여 놓은 이학도와 공학도의 길을 벗어나지 못 했다.

생계 이야기라면 공학도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만 그렇다고 문학도가 공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지 여태까지 죽 걸어와서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빠져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제대로 된 길을 걷지 못하고 샛길을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고 실망은 안 한다.

후회도 없다.

돈 없는 사람이 돈벼락을 맞으면 인생 자체가 벼락을 맞을 확률이 99.9%라고 하듯이 어떤 길이 정도인지 모르고, 좋은 것이 있으면 안 좋은 것도 있는 것이니 사라 온 길의 성패 여부 평가도 불가능하다.

 

위안 삼는 것은 있다.

기술인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누구한테 누를 끼친다거나, 어디엔가 해를 미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주어진 일에 정성을 기울이다보니 예상치 못 한 일정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고, 유능하지 못 해도 기술 분야 전문가로서 어느 정도 역할도 하고 있다.

 

미당 선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전 쟁이다.

변전소의 핵심 설비와 주요 Tr(변압기)GIS(개스절연장치)인데 그 분야에서만 40년 넘게 주구장창 일하고 있다.

그럼 도사가 되어......,

그 경지까지는 아니다.

까마득하여 거기까진 못 갈 것 같다.

제한적인 지식과 일부 경험을 갖고 있는 수준이다.

YB 시절 평생을 그 분야와 함께 했고, OB가 되어서도 그 분야 일에 십 년이 넘게 전문가로서 종사하고 있으나 깊이 들어가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많다.

그래도 할 일은 다 한다.

달인이 아닌 죄송스러움을 만회하려고 노력한다.

미력하나마 능력껏 기여를 하고 있고, 그를 기화로 현역못지 않은 퇴역 대우를 받고 있어 뿌듯하다.

고마운 일이다.

 

변전 쟁이는 어렵다.

송전선과 함께 변전소는 종사자도 주민도 싫다고 기피한다.

꼭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 동네에는 내 땅에는 들어서면 안 된다는 혐오 시설로 분류된다.

직업 만족도도 낮다.

인기도 없고, 수익성도 안 좋고, 동료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일종의 사양 산업화된 분야가 송변전 분야다.

발전과 배전과 함께 전력산업의 핵심이면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다.

비운의 신세인 변전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약진을 하고 있다.

장차 주요 핵심 기술로 상용화되고 있는 AI, Big Data 등 첨단고도산업의 확충에 따라 전력수요와 전력설비 건설이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송전선과 변전소를 새워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호황에 호황을 누리고 있단다.

국내뿐 이아니라 선진제국도 마찬가지란다.

중전기 메이커들의 수주 수출 물량이 6년 치를 넘어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즐거운 비명이란다.

현직에 있을 때 후발주자로 근근하게 연명하던 H 중전기였다.

그런데 남원에서 시행사로 일할 때 보니 대어로 성장하여 큰 기침을 했다.

파안대소하는 그 기조가 죽 이어질 것 같다.

H 주가도 2022년 말에 처음 만나 업무를 시작할 때는 몇 만원이던 것이 수십만 원까지 올랐고, 앞으로도 오를 일만 남았지 내려 갈 일은 없다니 인생역전드라마다.

 

<전력 슈퍼사이클 진입전 세계서 찾는 변압기> 란 기사다.

쾌재를 부른다.

일을 이제 접고 쉬어야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놔두진 않을 것이라는 후배님들의 말이 떠올랐다.

현 추세대로라면 송변전 분야 인력 부족이 심각할 것이란다.

누구 말마따니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현장 일터로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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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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