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면 편안하다.
차분하고 엄숙하기도 하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 베란다로 나간다.
어둠을 벗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과 아파트 모습이 좋다.
그대로 여명의 멍때리기에 들어간다.
향촌은 무사하고, 향촌 주민들은 무탈하신가.
기다림의 시간에 개인, 가사와 대내, 성당, 국가사회와 대외 일정은 뭔가.
베란다에 겹겹이 쌓아 놓은 쎄컨 하우스(Second House0 짐은 잘 됐나.
이거는 머리를 비우는 멍때리기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머리를 가득 채우는 사색의 옥조임 같기도 하다.
그래도 새벽은 상큼하다.
일정이 꽉 차 있다해도 그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시급을 다퉈 털어낼 게 아니라 좀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멍때리기를 즐기는데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방해꾼이 나타났다.
여간해서는 없는 일이다.
저기 좀 한 번 가보자며 손을 이끌었다.
겨울잠 자다 잠시 깬 곰 새끼처럼 마지 못 해 주방으로 가서 보니 창틀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졌다.
왜 그런지 눈여겨보는 사이에 콸콸 흘러내렸다.
세심하게 살펴봤다.
윗집에서 무슨 이상이 생겨 누수가 발생한 것 같았다.
우선 수건 여러 장으로 닦아내고 불받이 그릇을 대 놓고 잠시 생각해봤다.
우리 집이 아니라 윗집에서 해결할 문제인데 어떻게 할까.
물이 샌다는 것을 알면 무슨 조치를 하고 있을 테니 기다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른다면 윗집도 우리 집도 피해가 클 것이다.
결론이 났다.
일단은 누수 현상을 알리기로 하고 올라갔다.
문이 열려있고, 공구 같은 것이 거실에 널려 있었다.
물새는 것을 알고 조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저기 아랫집인데요. 주방으로 물이 콸콸 샙니다. 그래서 알려드리려고 왔는데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못 보던 초로의 남자가 바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배관이 터져서 그럽니다. 수리중이고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쑥스러웠다.
그 것도 많이 쑥스러웠다.
괜히 올라왔다 싶었다.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아, 알고 계시는군요. 걱정되시겠어요. 그럼 일 보세요” 하고는 내려왔다.
그렇게 새벽과 낮이 지나갔다.
오후 늦게 부부동반으로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데 문 앞에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택배는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뭘 전하려다가 부재중이니까 놓고 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와 쇼핑백에 뭍은 메모를 보고는 놀랐다.
윗집에서 보낸 것이고, 메모는 새벽부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인사였다.
이런 일은 뜸을 드릴 것이 아니었다.
미안함고 고마움을 표하기 위하여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윗집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으나 부재중인지 문이 안 열렸다.
그 뒤로도 아침, 점심, 저녁 시간차를 두고 올라갔으나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마도 멀리 가셨거나 장기 수리중인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윗집 분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 땐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감사를 표해야겠다.
실례를 무릅쓰고 새벽에 올라간 것은 항의가 아니라 물이 샌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한 것이고, 주신 음료수는 시원하게 또는 따뜻하게 잘 마시겠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다.
콸콸 새는 물 때문에 죄송합니다.
물이 콸콸 샌다는 것을 알린다고 올라간 거 죄송합니다.
그리고 윗집도 아랫집도 몰랐던 이웃사촌이 죄송하고, 늦게나마 이웃사촌임을 확인한 게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콸콸이 아니라 쏴쏴 폭포수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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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