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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부르는 게 값이다

by Aphraates 2024. 10. 16.

부르는 게 값이다.

토를 달지 않고 달라는 대로 준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는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물건이 모자라 딸려서가 아니다.

세상 물정과 물건 값을 몰라서가 아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다급해서가 아니다.

강압에 못 이겨서가 아니다.

측은지심에서가 아니다.

맘이 여려서가 아니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호구라서가 아니다.

 

태생(胎生)인 것 같다.

착한 것인지, 순박한 것인지, 인간적인 것인지, 개념이 희박한 것인지, 사려 깊지 못한 것인지, 알뜰살뜰하지 못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뭐 좋고 안 좋고 하는 그런 것 하고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게 뭔데.

뭐냐 하면 이거다.

향촌 부부가 물품을 구입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다.

"얼마입니다" 하고 말하면 달라는 그대로 주는 거다.

백 프로 퍼펙트하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십중팔구(十中八九)는 그렇다.

디스카운트나 덤을 요구하는 체질이 아니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인정하면서 찜찜하거나 서운한 적도 거의 없었다.

받을 만하니까 그렇게 불렀을 것이라 믿고, 당사자 간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나 사회 통념상 상식적으로 통하는 신용거래이고, 사안에 따라 ± 플러스마이너스 거래를 반복하지만 끝에 가면 ±가 제로섬이고, 언제 어디서고 민주적인 시장경제 논리는 작용한다고 믿는다.

코딱지가 살이 되는 게 아니다.

값이 안 맞으면 좀 낮은 것으로, 양이 안 맞으면 좀 적게, 능력이 안 되면 단념하거나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쇼핑하는 당위성과 즐거움은 뒤로 한 채 값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것은 정찰제 거래에 반하는 것이자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안사고 안파는 게 훨씬 더 낫다.

 

안방 화장실에서 누수가 좀 비쳤다.

우리 집이 아니라 아랫집에서 그랬다.

두 주인이 휴대용 랜턴을 들고 면밀하게 살펴봤다.

비전문가인지라 잡히는 게 없었다.

어디서 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윗집인 우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출근 시간이 되자 관리 사무소로 연락하여 누수 원인 확인을 요청했다.

잠시 후에 영선선 담당자 두 분이 오셨다.

죽 살 펴 보시더니 윗집 세면대에서 배수관 이음매에서 새는 것 같다면서 자세한 것은 설비 업체와 상의 및 수리를 하라 안내해주셨다.

바로 단지 앞에 잇는 영선업체에 연락을 했다.

전에는 어지간한 영선 문제는 관리 사무소 설비담당자들이 해주셨는데 요즈음은 시스템이 달라졌다.

집안의 설비 이상은 현상파악이나 점검은 관리사무소에서 하지만 수리는 세대가 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세대는 잘 모르니 전문 업체나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보통이다.

섣부르게 만지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갈래로도 못 막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아예 외주를 주는 것이 낫다.

 

점검결과 중수리가 아니라 경수리였다.

다행이었다.

운전자 보험에 포함된 수리비 항목으로 결제하려고 알아봤다.

수리비 OO만 원 이하는 보증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기사님한테 수리비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보증금 이하였다.

보험 처리를 안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달라는 대로 즉시 결제하였다.

오죽 알아서 그 값을 불렀을까.

각기 다른 분업체제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꼭 단순 비교하여 싸다 비싸다 할 것은 아니지만 부르는 게 값이라고 인정을 한 것이다.

빨리 마무리 짓는 편이 유리하다.

물이 새서 이거 어쩌나 하고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얼른 처리하고 쿨하게 잊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런 생각으로 속전속결 처리했더니 후련했다.

 

부르는 게 값이다.

실수하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니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달라는 대로 줘라.

까아서는 안 되는 돈 몇 푼 깎으려고 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눈총 받고, 자존심 상하면 에누리 받은 것 이상으로 손해인 그런 바보스러운 짓은 안 하는 게 현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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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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