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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돼지털 깎는 것도 아니고

by Aphraates 2024. 10. 20.

전기면도기가 하나 있다.

꽤 오랫동안 써 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쯤부터 쓴 것으로 기억된다.

20년이 훌쩍 넘었다.

너무 오래 쓴 것 같아 미안하다.

면도기 회사에서 알면 그렇게 오래 쓰면 우리는 뭘 먹고 사느냐며 서로서로 작은 것일지라도 서로서로 돕고 살자고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지간하다.

가전제품 내용 연수를 7-10년으로 보고 설계하고 생산한다는 데 기술 동향과 소비 진작의 경제 논리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징하다.

알뜰살뜰한 살림꾼인지, 돈이라면 벌벌 하는 구두쇠인지 모르나 너무했다.

소갈머리 없다거나 주변머리 없다는 비판이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여태껏 고장 난 적이 없었다.

충전해 작동시키면 돌아가서 별 생각 없이 썼다.

면도기의 기능과 디자인, 작동과 면도 상태, 피부 부작용 여부에 대한 개념이 없이 그냥 써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천으로 갈 이삿짐들을 정리하면서 면도기를 업그레이드시켜 하나 샤로 구입했다.

시사용 해보면서 왜 그렇게 사니하는 탄식을 했다.

중간 급 면도기를 사면서 뭐 이렇게 비싸. 비싸봐야 몇 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쓸 만해 보이는 것은 몇 십만 원 대네. 이거 칼만 안 들었지 OOO들 아닌가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건 조족지혈이었다.

집에 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보단 싼 것은 몇 종류 없었다.

대신에 그 몇 배 되는 고가의 면도기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내가 세상물정 너무 모르고, 무관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됐다.

 

새 면도기를 몇 번 써보니 기분이 좋았다.

부드럽고, 가볍고, 끼끗하고, 소리 없이 턱주가리를 밀어내줬다.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몇 번을 힘줘 밀어내야 하는 기존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돼지털 깎는 거도 아니고......,

왜 그렇게 미련 맞게 옛 것을 고집하여 불편한 면도를 했을까.

쑥스러워 뒤통수를 긁적였다.

다른 데는 돈을 잘 쓰면서 정작 자신한테는 인색한 데도 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우스웠지만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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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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