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면도기가 하나 있다.
꽤 오랫동안 써 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쯤부터 쓴 것으로 기억된다.
20년이 훌쩍 넘었다.
너무 오래 쓴 것 같아 미안하다.
면도기 회사에서 알면 그렇게 오래 쓰면 우리는 뭘 먹고 사느냐며 서로서로 작은 것일지라도 서로서로 돕고 살자고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지간하다.
가전제품 내용 연수를 7-10년으로 보고 설계하고 생산한다는 데 기술 동향과 소비 진작의 경제 논리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징하다.
알뜰살뜰한 살림꾼인지, 돈이라면 벌벌 하는 구두쇠인지 모르나 너무했다.
소갈머리 없다거나 주변머리 없다는 비판이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여태껏 고장 난 적이 없었다.
충전해 작동시키면 돌아가서 별 생각 없이 썼다.
면도기의 기능과 디자인, 작동과 면도 상태, 피부 부작용 여부에 대한 개념이 없이 그냥 써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천으로 갈 이삿짐들을 정리하면서 면도기를 업그레이드시켜 하나 샤로 구입했다.
시사용 해보면서 “왜 그렇게 사니” 하는 탄식을 했다.
중간 급 면도기를 사면서 “뭐 이렇게 비싸. 비싸봐야 몇 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쓸 만해 보이는 것은 몇 십만 원 대네. 이거 칼만 안 들었지 OOO들 아닌가”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건 조족지혈이었다.
집에 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보단 싼 것은 몇 종류 없었다.
대신에 그 몇 배 되는 고가의 면도기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내가 세상물정 너무 모르고, 무관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됐다.
새 면도기를 몇 번 써보니 기분이 좋았다.
부드럽고, 가볍고, 끼끗하고, 소리 없이 턱주가리를 밀어내줬다.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몇 번을 힘줘 밀어내야 하는 기존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돼지털 깎는 거도 아니고......,
왜 그렇게 미련 맞게 옛 것을 고집하여 불편한 면도를 했을까.
쑥스러워 뒤통수를 긁적였다.
다른 데는 돈을 잘 쓰면서 정작 자신한테는 인색한 데도 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우스웠지만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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