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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둘이 만 원

by Aphraates 2024. 10. 19.

어제 두 번 째 이삿짐을 날랐다.

내리는 비가 운치 있었다.

궂은 비 내리는 명동 거리란 노랫말이 정겹게 다가왔다.

이삿짐은 나중에 한 번에 갖고 가도 되지만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해서 다녀왔다.

 

우선은 대전-대천(보령)을 오가는 노선 확인이었다.

인터넷으로 경로 확인을 했으나 검증 차원에서 실측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가는 길은 대전-당진 고속도, 원래 다니던 대전-공주-청양-대천 길(36번 국도), 가끔 다니던 대전-논산-부여-대천 길이다.

몇 회에 걸친 검증 결과 36번 길이 90km1시간 20분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되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길로 다니기로 했다.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길이고, 미당 본가도 중간에 있는 길이다.

가장 열악하다던 그 길이 그렇게 빠르고 편리한 길이 된 것은 수십 년에 걸쳐 준공된 4차선 확포장이 되고, 다른 길도 여럿 생겨 교통이 분산이 돼서 그런 것 같았다.

 

다음은 집안 청소 문제였다.

전에 살던 사람이 나가고 주인 측에서 용역업체를 시켜 청소를 하긴 했지만 바로 들어가 살기에는 좀 찝찝했다.

우리 식으로 다시 한 번 청소해야 할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타향살이 용 진공청소기를 비롯해 청소 도구를 갖고 가 집안을 나눠 정리와 청소를 했다.

주방 쪽은 데보라가 맡았다.

회사로 갖고 갈 비품과 문구류 박스, 옷걸이와 건조대, 거실을 위시한 안방과 욕실과 세탁실은 미당 선생이 했다.

 

대천 사택은 중심가에 있는 새 집이다.

에어컨, 냉장고, 전자와 가스레인지, 인터넷, 텔레비전, 세탁기 등이 웬만한 것은 옵션으로 다 구비돼 있다.

정리와 청소를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일찍 가기도 했지만 끝나고 나니 11시가 조금 조금 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대천 5일 장(3, 8)이었다.

데보라가 눈독들이던 시내 한 복판에 연달아 있는 중앙 시장과 한내 시장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비 오는 날이어서 다음에 개시하기로 했다.

점심 먹으려고 지난번에 갔던 식당에 갔다.

만원 사례였다.

종업원이 테이블을 치우는 사이에 옆에 기다렸다가 앉았다.

주방이고 홀이고 손님이고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것이 시원시원했다.

식사 후의 계산도 간단했다.

다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면 얼마냐고 묻거나 대답할 것 없이 손님이 나가면서 주방 쪽에 있는 돈 바구니에 돈을 넣는 시스템이었다.

식단이 풍성하고 맛깔스러웠다.

수더분한 주인과 종업원, 오피스 걸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에서부터 구부정한 시골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손님이었다.

주객간의 대화도, 음식을 내오고 먹는 것도, 돈 내는 것도 옛적 함바 식당 스타일이었다.

 

낯선 손님인 우리도 맛있게는 먹었는데 돈 내는 것이 어설펐다.

지난번에는 현금이면 만 원, 카드면 만 이천 원이라고 하여 오만 원 짜리를 내고 얼마인지도 모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오늘 같은 장날도 마찬가지인지 아니면, 더하거나 덜하는 것인지 몰랐다.

모르거나 궁금하면 체면 불구하고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뚱뚱한 종업원에게 물어보는 척 하다가 밥값이라며 이만 원을 줬더니 얼른 만 원을 되돌려 줬다.

의아해서 얼굴을 바라봤더니 고개를 약간 숙여 혼자면 육천 원, 둘이면 만 원이라며 웃었다.

그제야 이사소통이 제대로 된 것이었다.

궁금증도 풀렸다.

그러니까 1인 분이 현금이면 만 원이고 카드면 만 이천 원이 아니라 오천 원/육천 윈이었던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이래서 12시도 안 됐는데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릴 정도로 많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장사가 안 돼 어렵다고 해도 이런 집처럼 잘 되는 집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손님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되니 제발 그만 좀 오던가, 한가한 시간에 좀 오라고 면박을 줘도 꾸역꾸역 찾아가 얼렁뚱땅 한 그릇하고 기분 좋게 이를 쑤시며 나오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점심 때 대천(大川) 집은 문전성시였다.

반면에 저녁 때 구역회의 대전(大田) 집과 인근은 개점휴업이었다.

기분 좋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아니라 화나는 불금의 그림이다.

정문에서 건너가 들어선 먹자골목은 불빛도 인적도 쓸쓸했다.

가는 짧은 거리에도 임대 010-0000-0000”라는 커다란 안내판 붙은 1층 가게가 여럿이었다.

서울로 치면 명동의 뒷골목인 대전의 둔산동 갤러리아 앞의 청춘 골목이 그렇다니 대전의 도심지 이외 다른 지역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같은 클 대()의 냇가()이자 밭()인데 그렇게 차이가 나다니......,

그래도 작은 대천보다는 큰 대전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교도 됐다.

 

이래서 불만인가보다.

지표상으로 경기가 괜찮다는 뜬구름 잡는 말만 하지 말고 제발 시장골목 좀 돌아보고 서민들 먹고 살게 좀 해달라는 호소가 설득력 있이 들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인 미당 선생 같은 세대들이야 좀 불편은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노프러블럼이다.

의식주에 크게 구속받을 것이 없다.

견물생심을 접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부족함과 어려움을 피부로 직접 느끼는 세대들은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전민동 세모시에서 청쫄(靑卒) 만남이 있다.

만나면 반갑고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그 때 그 시절의 청양전력소 쫄들이니 소맥폭탄 여러 개 터트려야겠다.

 

https://youtu.be/bJmpTs_94Ww?si=dV7C-KmEkAi2jJ7U

비내리는 명동거리/배호/박영애 전자올갠,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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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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