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짱이 휑하다.
일정도, 업무도 채울 게 별로 없다.
다음 현장을 기다리며 휴식과 준비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끼장은 옛날 말이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경상도 사투리라고 돼 있다.
공책, 짓기장, 잡기장, 필기장, 노트라고도 했다.
오늘 날의 노트북(Note Book)나 태블릿 피시(Tablet PC)로 보면 될 거다.
미당 선생은 해마다 두 권의 자끼장을 쓴다.
엄밀히 말하면 백지 자끼장은 아니다.
가톨릭 전례력(典禮曆)과 음양의 연력(年歷)이 있는 일기장 다이어리다.
가톨릭 신문사에서 연말이 되기 전인 11월쯤에 구독자에게 보내주는 다이어리이고, 전기인기술협회에서 연초에 회원에게 배부하는 업무 수첩이다.
둘을 동시에 쓰진 않는다.
기록할 양이 많을 때만 둘을 병행해서 쓴다.
주로 1월1일부터 사용할 수 있게 도착하는 가톨릭 다이어리를 메인(Main, First, 주, 主)으로 하고, 연초 지나서 도착하는 협회 기술 수첩을 써브(Serve, Second, 보조, 補助)로 사용한다.
요즘 성당 다이어리가 한가하다.
기술 수첩은 아예 열지도 않는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꽈 채워서 기록할 게 없다.
보충 설명을 덧붙인다면 빡빡하게 적을만한 활동 사항이 없다.
그런데 시월의 마지막 날부터 한가한 것도 끝났다.
어제 부로 보령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빨리 착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늘어질 때는 한없이 늘어지더라도 급할 때는 급하면 급한 대로 시의적절하게 보조를 맞춰야 한다.
몸과 맘이 팡팡 돌아간다.
준비하고 있다가 긴장감을 갖고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어제 퇴근시간 전까지 발주처, 시공사, 감리사와 전화와 이메일로 정보와 자료를 주고 받으며 예비 킥오프(Kick off, 착수)를 했다.
착공계와 시공계획서를 검토하고, 수정보완 요청하고, 검토결과 초안을 작성하다보니 자정이 넘었다.
푹 잤는가 싶어 눈을 뜨니 평상시의 새벽 동트기 전의 그 시간대였다.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하기도 하지만 시간도 잘 간다.
다이어리와 수첩의 한가로움에 대해 걱정할 게 없다.
오죽하면 무주에서 농사지은 햅쌀을 갖고 온 요한 대자한테 오늘은 처리할 것이 많아 시간이 도저히 안 되니 만나기만 즐기는 소맥폭탄 작전을 내일 생각해보자고 했을까.
묵상을 하면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일에 치이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이제 현장에 그만 나가는 게 어떠냐면서 조심스럽게 물으시고는 쉴 때 푹 좀 쉬라고 하시던 작은 형님과 큰 형님 말씀이 떠올랐다.
가정적으로, 국가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일 많이 하셨으니 이제 그만하시고 성당 봉사하시면서 느긋하게 사시면 어떻겠냐는 치과 사모님 말씀도 생각났다.
“이 나이에 내가 하랴” 하는 코미디 카피가 있었다.
나이도 얼마 안 되는 형님이 가오(かお, 顔, 얼굴, 폼)잡느라고 나이가 좀 적은 동생들한테 한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새로 부임하신 노인회장님께서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올린다 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78세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4+4년의 재임을 목표로 뛰고 있다.
남 일이 아니다.
미당 선생도 그 범주내에 있다.
그런 저런 것에 걸리니 언젠가는 스탠스를 정해야 할 것이다.
고민할 건 아니다.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될 테니 따르면 된다.
일을 더 할 것인가 그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직은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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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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