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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어떻게 그리도 광을 잘 내던지

by Aphraates 2024. 11. 2.

신고 다니는 신이라면 가죽 구두가 대세였다.

희거나 검은 고무신을 싣고 다니는 괴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구두를 신고 출근하였다.

정장을 할 때는 물론이고 캐주얼일 때도 신은 구두였다.

가끔 캐주얼화나 운동화를 신긴 했는데 신선하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격이 떨어져 보였다.

수제화를 만드는 구둣방과 구두를 수선하는 노점 구두 수선방도 많았다.

국산 유명 브랜드도 있었다.

목 좋은 곳에는 브랜드 구두 가게가 자리 잡곤 했다.

비교적 투박하고 묵직한 스타일의 K제화와 날렵하고 가벼운 E제화와 쌍벽을 이루었다.

구두 색상은 주로 검정색이었으나 황색, 미색, 백색도 있었다.

 

구두는 대개가 반들반들했다.

영구 신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도 구두는 깨끗했다.

멋쟁이는 그 사람의 구두와 머리를 보면 안다고 했다.

극성맞은 사람도 있었다.

필리핀 대통령 부인 이멜다 여사는 미인대회 출신답게 사치가 극심하여 구두만 해도 몇 트럭이 된다고 하여 화제였다.

괴팍한 주정뱅이들은 술이 취하면 남자 구두나 여자 하이힐에 따라 돌리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구두 하나 사면 굽갈이를 해가면서 나른 나른해질 때까지 지나치게 지독한 구두쇠도 있다.

 

구두는 자주 닦았다.

좀 지저분해질라치면 남 보기가 무섭게 깨끗하게 닦았다.

구두를 닦는데도 기술이 필요했다.

고난도의 기술은 아니고 경험에 의존하는 하나의 기능이었다.

집에서 어른이나 아이들이 닦으면 정성을 기울여도 광이 잘 안 났다.

그러나 구두닦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하는 것 같은데도 짧은 시간에 파리가 미끄러져 자빠질 정도로 반들반들하게 닦았다.

그들만이 갖고 있는 노하우였다.

데 잘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아 신었는데 비가 올 때가 있었다.

기분이 좀 언짢았다.

구두를 닦으니 비간 온 것이냐, 비가 오는데 구두를 닦은 것이냐 하고 투덜댔지만 당연히 후자일 것은 뻔한 이치였다.

고민을 하다가 반들반들하게 닦은 구두는 벗어 사무실 책상 밑에 모셔두고 실내화를 신고 퇴근할 때도 있었다.

 

구둣방도 구두점도 고사 위기란다.

구두를 통 안 신는단다.

옷차림이 정장에서 자유복으로 바뀜에 따라 일감이 절반 이상으로 팍 줄었단다.

미당 선생 같은 사람도 있다.

1990년대 말에 사 신던 K제화 몇 켤레는 삼천포 현장에서 신다가 정리했지만 2000년대 초에 산 구두 몇 켤레는 아직도 먼지가 뽀얀 채로 신장에 자리 잡고 있다.

정장을 할 때나 신어야 맞는데 정장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구두도 자연스럽게 안 신어진다.

평상시에는 작업화와 산책 시에 신는 가벼운 등산화를 주로 신고 다니다가 좀 가볍게 움직일라치면 황색이나 미색의 캐주얼화를 신는다.

얼마 전까지는 운동화도 좀 신었는데 신고 뛸 일이 거의 없어 안 신고 집에 놔뒀더니 저절로 낡고 헤어져 폐기처분했다.

아마도 남들도 사정이 비슷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구두가 빛을 발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두가 어렵 단다.

여간해서는 찾는 사람이 없단다.

외국 브랜드 커피가 휴게소 중앙에 있다면 믹스 커피 자판기는 화장실 가는 구석에 안 보이게 감춰진 그림과 같은 구두 신세가 된 것이다.

햄버거와 핫도그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한테 찐빵을 먹으라고 건네면 쳐다보도 안 하고 가버리는 그림과도 유사하다.

또 있다.

어제 소고기 데이라고 해서 여고 옆 동네 소고기집에서 소맥폭탄부대 작전을 했는데 전후좌우 테이블에서는 청춘들이 브라보를 우렁차게 외쳤지만 우리 일행들은 건강합시다하고 개미 소리만 하게 목소리를 낸 그림과도 닮은 구두 신세가 아닌가 한다.

 

구두를 만들고 닦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자고 구두를 신으라 하거나 구두 산업 활성화 대책을 수립하여 회기적인 지원을 할 형편도 아니어서 시름이 깊어진단다.

세상 흐름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구두도 방도를 달리해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던가, 전업을 하던가, 일손을 놓던가 해야 할 텐데 어느 것 하나 녹녹치 않을 테니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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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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