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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영세 소상공인

by Aphraates 2024. 10. 29.

오디오 장식장과 거실 찻잔 세트 장식장 유리문이 깨진지 좀 됐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둔 채로 죽 써왔다.

타향 임지로 나가 있을 때가 더 많아 신경도 안 쓰였다.

유리가 있는지 없는지 별 표도 안 난다.

속에 넣어 보관하는 것을 꺼내 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먼지가 좀 들어가 뽀얀 기운이 돌긴 하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다.

다른 거 같으면 벌써 폐기 처분했어야 하는 것인데 입주 때부터 있는 것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향촌 집에서 한 둬 달간 쉬면서 자주 보니 눈에 거슬렸다.

꽁지 빠진 장닭같았다.

시간 있을 때 그거나 끼워볼까 하고 유릿집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군데 있기 한데 대부분이 큰 유리취급만 하는 가게였다.

장식장의 작은 유리를 끼워달라고 하면 귀찮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밑져봤다 본전이다.

정말로 영업을 잘 하는 사람 같으면 후일 대어를 생각해서라도 잔챙이한테도 친절봉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집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깨지 유리문 두 개의 사진과 함께 수리 가능하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가능하다고 답이 왔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그럼 월요일 오전 중으로 우리 집에 방문해 달라 요청했고, 그게 성사가 되어 오늘 유릿집 중년의 사장님이 오셨다.

작은 트럭에 뒤 거치대에 유리를 양쪽으로 싣고 공구 통을 들고 오셨다.

 

작업하는데 방해가 될지 몰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시라면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시사 대담프로였다.

보수/진보 성향의 두 패널이 출연하여 진행자의 리드에 따라 시사 토론과 평론을 이어갔다.

대담 구도는 도등한 위치가 아니고 좀 기울어진 운동장 같았다.

보수 측에서는 수세적으로 되도록 발언을 줄이고, 진 보측에서도 공세적으로 하되 가능하면 너무 센 발언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역력했다.

금방 멱살잡이라도 할 것처럼 공방이 뜨겁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둘이 숨고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은 다 알테니 여기서는 언급을 회피한다.

 

팔짱을 끼고 대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유릿집 사장님이 대담소리가 들리는지 나를 쳐다보면서 사장님은 어느 편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그래서 원래 보수주의 편인데 나이 들면서 약간 진보적인 면이 가미되었지만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하였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아니면 보수나 진보나 중도나 내색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구분은 필요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 치부해버린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금 잘 하고 있나요 못 하고 있나요 하고 물었다.

열심히들 하고 있지만 양에 차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개선하거나 회복되기 어려운 근본적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지나가는 말로 이어갔다.

저는 정통 영세소상공인 자영업자인데요 지금......,

해도 해도 너무......,

OO당한 것 같아 아예......,

편을 가르는 사장님이라면 정색을 하며 별의별 험담을 다 할 텐데 그래도 자기 일 묵묵히 하면서 무던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다른 것 알 것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자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한테 선물을 한 보따리 주지는 못할망정 쓰레기 더미는 던지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보살핌을 받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할 말을 잊고 있으니 맘이 아프다.

 

자칭 영세소상공인라고 하시는 그분에게 다른 건 해줄 것이 없다.

구멍가게 주인한테 영세소상공인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담스러울 거 같아 미안하다.

작은 일이지만 기분 좋게 결재해주고 싶었다.

얼마 드리면 되느냐고 하였더니 유리는 작지만 좀 비싸다면서 OO만 원 이라고 하셨다.

두 말 할 거 없었다.

건네 명함에 있는 계좌로 이체하고는 수고하셨다 인사하면서 다음에 유리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겠다고 하였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가셨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다 잘 알면서도 그를 실천하는 데는 어렵다.

그래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

우리 같은 세대들이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미래를 책임지거나 미래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천우신조 (天佑神助)는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인풋(Input, 입력)이 있어야 그에 상응한 아웃풋(Output, 출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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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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