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의 실크로드, 차마고도, 티베트에 관한 여행기를 몇 권 읽고 나서 지금은 중남미 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지에 대한 여행기를 몇 권 째 보고 있다.
험한 산악지역이거나 천박한 땅에 화려한 마야 문명을 일으킨 원주민들의 위대함이 경이로우면서도 그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파괴한 침략자들의 잔혹함이 새삼 느껴졌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땅에 몹쓸 질병을 옮겨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고, 그에 따른 부족한 노동 인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흑인을 상대로 인신매매(人身賣買)를 하던 유적지들에 관한 역사기록을 보면서 노예로서나마 살아남기 위하여 짐승보다도 못한 별의별 짓을 다 해야 했던 모습들이 연상되어 슬펐다.
구한말의 우리 민족들도 비슷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나마 살아남기 위하여 하와이, 사할린, 만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갖은 고초를 다 겪었다.
주인공인 1세대들은 거의가 다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그 2,3세 후세들이 남아있는데 이방인으로서 겪는 고초는 그 선대들이나 다름없는 거 같다.
조선인도 아니고 현지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족으로서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 이주(移住)이지 실은 주변 열강들에 의하여 노동력 착취를 당한 인신매매의 후유증이나 다름없다.
그 지역을 다녀 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생면부지의 땅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한 맺힌 사연과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서럽게 지나온 세월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죽기 전의 그들 소망은 위대한 조국인 한국에 다녀오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조국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민감한 민족문제에 대해서 누구 하나 귀 담아 듣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나라 사람들이나 비참하게 끌려가는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나 없던 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갔으면 하는 눈치이니 그 억울함 어디에다가 하소연해야 할 지 막연할 텐데 누가 나서서 그를 풀어줄 것인지 요원한 것이 아닐까?
인신매매라면 부녀자를 납치하여 외딴 섬에 팔아넘기거나, 부랑아를 취직시켜준다고 속여 멍텅구리 새우 잡이 배로 보내거나, 나이 어린 소녀들을 유흥가에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것을 연상하지만 그 것만이 인신매매가 아니다.
해외사업을 하느라 열사의 나라인 중동지역에 나가 땀 흘리는 근로자들이나 나뭇잎으로 심벌만 가리고 사는 사람들한테 모피 코트를 팔기 위하여 아마존 밀림 지역을 헤집고 다니는 상사원(商社員)들도 좋게 말하면 정당한 상거래를 하는 무역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품 팔아 먹는 인신매매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억울한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보면 치가 떨리듯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하여 돈이 된다면 지구촌 방방곡곡은 물론이고 돈이 된다면 저승사자를 만나서 담판이라도 지을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와 상사원들의 애환을 생각하면 석유 한 방울, 목재 하나 함부로 낭비할 일이 아니다.
건강하시고 돈 많아 버세요.
좀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하여 열악한 환경의 외국으로 떠나시는 분에 대하여 다들 한결같이 건넨 인사말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원해서 하는 일이고, 전문 기술 경영자로 픽업되어 가는 것이니 잘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분 말마따나 외화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와야 된다는 야심에 찬 각오를 본받아야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볼 때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서 마땅하게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일거리를 따라 물설고 낯서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내키지 않는 일이고, 신종 인신매매기법이라는 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침 우리 민족의 인신매매 문제와 관련하여 그 한복판에 서 있는 나라에서 다시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잊어버릴 만 하면 슬쩍 꺼내들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고 있는데 다분히 계산적으로 장기적인 준비와 투자를 하는 그들과 우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분노하며 머리띠를 두르고 성토하는 우리들과의 갈등이 어떻게 갈무리될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할 거 같다.
인신매매를 생각하다 보니 만행스러운 민족학살을 자행한 게르만 민족 독일의 과거는 용서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를 잊을 수는 없다는 유태인(猶太人)들의 말이 떠오른다.
말 달리던 혜란 강과 일송정,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들어가던 사할린 탄광, 채찍질을 피하며 일하던 하와이 사탕 수수밭, 풀 한 포기 안 자라나는 먼지 뽀얗게 이는 황무지를 일구던 중앙아시아......, 그 곳의 모습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글로벌 시대에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그르쳐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 후손들은 예전의 그 모습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