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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냉온탕

by Aphraates 2008. 7. 16.
 

냉온탕은 천당과 지옥, 열대와 한대, 거부와 극빈, 극과 극, 상투와 바닥, 고점과 저점, 빛과 그림자, 유와 무......, 그리고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남과 북 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그러나 하드웨어(H/W)적으로는 그렇게 구분되지만 소프트웨어(S/W)적으로는 꼭 구분이 추종되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마음 갖기에 따라 냉탕도 되고 온탕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 동네 목욕탕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단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고유가의 영향이기도 하고, 시설 좋은 대형 찜질방과 사우나가 많아서 구멍가게 식으로 운용되던 목욕탕은 버텨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인체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욕탕의 냉온탕에 번갈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 몸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목욕탕에 가 보면 실제로 몸을 덥혔다가 식혔다 하면서 시원하다는 신음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체질상으로 냉탕에는 들어가도 온탕에는 못 들어간다.

냉탕에 들어가서는 몸을 움츠리고 턱을 떨긴 해도 남들이 있는 시간만큼은 견디어 내지만 온탕에 들어가면 숨이 콱콱 막히고 몸에 경련 같은 것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온탕에 들어가 눈을 지그시 감고 몇 십 분씩 즐겨도 나는 잘 들어가지도 않을 뿐 더러 들어가도 몇 분 견디지 못하고 열기가 오르기 전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안 그럴 때도 있긴 하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이다.

몸이 어딘지는 모르게 안 좋은데 병원에 가거나 약은 먹기 싫고 나름대로 물리적인 방법으로 몸을 혹사시켜 치유한다고 목욕탕의 온탕에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몸이 노골노골해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정상적인 정신상태는 아니고 오기로 그러는 것이다.

미련한 방법을 써가면서 싫어하는 온탕에서 그러고 나오면 가끔은 몸이 가뿐해지기도 하고, 사람은 무엇을 하던 마음 갖기에 따라 못 할 일이 없다는 낯간지러운 자부심도 생긴다.

허나 그 것도 어느 정도 기본 체력이 보존되었을 때 이야기이지 체력이 떨어져 함량 미만일 때는 그렇게 해봐야 싫어하는 온탕에서 참아내느라고 몸만 더 망가져서 나온다.


취업에도 냉탕과 온탕의 희비가 엇갈리는데 그도 마음 갖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지만 합격한 몇 군데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무실 사람 몇 명 채용하는데 수 백 대 일의 경쟁률이 말해주듯이 실업률이 높다는데 현장에서 일할 사람 몇 구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겠느냐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다.

뭔가는 조화가 안 맞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마음을 조금 바꾸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창출되어 냉탕이 온탕 되고, 온탕이 냉탕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취업하기가 어려워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거나 대학원 입학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을 때 어렵지 않게 대기업 공채 사원이 되어 몇 년 잘 다니며 인정받던 대자(代子)가 그보다 더 큰 대기업의 유망한 분야에 경력사원 시험에 합격하여 고민 중인데 어찌하면 좋을지를 상의해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장경력문제, 결혼과 맞벌이 문제, 연봉 문제, 집 문제 등등 여러 가지가 걸려 있어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떠돌이 같은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문제들은 마음 갖기에 따라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니 다 뒤로 미루어 점차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큰 줄기인 직장 문제 (담당업무, 회사 장래성을 고려) 하나만 먼저 생각하여 결정하라고 하였더니 정답이라고 수긍하였다.


며칠 전에는 택배를 하고 있는 지인의 아들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차를 같이 마시면서 “네 전공이 아니고, 안정된 일은 아니겠지만 기왕 시작한 것이니 할 때는 열의를 갖고 성의껏 잘 해라. 적성이 맞으면 일은 좀 험해도 마음 갖기에 따라 대성할 수도 있는 일이니 잘 관찰도 해 보고 말이야. 알았지?” 라는 격려를 해 주었는데 갈 곳이 남아돌아 걱정하는 대자나 갈 곳이 없어서 걱정하는 그 아이나 추락하는 냉탕보다는 비상하는 온탕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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