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으세요?”
“뭔 별 일이야 있겠어요”
“그럭저럭 숨쉬며 살고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흔히 나누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간단한 인사를 나누기도 어색하다.
어려운 경제 여건이다 보니 일상적인 오가는 인사말에서도 다른 뉘앙스를 풍겨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별반 차이가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평소대로 가볍게 안부 인사를 하는 것일지라도 급격한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직장에서의 퇴출이나 사업에서의 부진함을 들춰내어 꼬집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신상에 큰 변화가 없이 전과 같이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걱정해주는 것이 진솔하게 들려 고맙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처지가 된 사람한테는 배부르고 등 따서 평탄하게 사는 사람의 지나치는 형식적인 그런 인사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 하고 사람 약 올리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니 감정만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세태를 반영하여 인사말을 바꿨다.
나 자신이 그렇게 편안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뀐 인사말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고 일시적일 것이라 믿는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는데 엉뚱한 인사를 하여 누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는 이겨내며 건재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성도 있어서 한시적으로 바꿨다.
전에는 이랬다.
윗분들에게는 “별고 없으시지요? 저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년배나 아랫사람들에게는 “무탈하지? 나는 항상 잘 지내고 있소” 라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다.
조금 두루뭉술하게 강약을 조절하여 “건강하시지요? 저는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와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네” 라고 인사를 한다.
지난 주말에 데보라와 함께 청양 본가에 다녀오면서 동네를 걸어 올라가시는 우리 앞집에 사시는 친구 아버지를 지나쳤다.
아마도 시골 장이나 경로당에 다녀오시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에 품팔이를 하시며 가정을 꾸려 가시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는데 팔순의 연세에도 그렇게 정정하게 혼자 걸어서 다니실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복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오늘 출근하면서 애향회(愛鄕會)로부터 그 분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고향 형님께 어찌된 일이냐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하루에 차가 다녀봐야 몇 대 안 되는 동네길이고 행인들도 적어서 전혀 교통사고가 날 곳이 아닌 동구 밖에서 잘 아는 이웃 동네 분의 오토바이와 추돌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끈질긴 삶을 살아오신 분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밤새 안녕”이라는 옛날 인사말이 떠올랐다.
그 분에게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안케 해 주시라는 화살기도를 바치고 났는데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인사말이 바뀐다.
인사말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어려운 시기에 남 걱정할 새 없지만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느냐며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에 의기소침하여 움츠리지 말고 인사말이라도 박력 있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척 어려워 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인사말들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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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 :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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