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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그러시면 저희들은 굶어 죽습니다

by Aphraates 2008. 11. 25.

얼마 전부터 작동이 원활치 않던 안방의 비데(Bidet)가 아주 먹통이 돼 버렸다.

제법 큰 회사 제품이어서 콜센터로 A/S를 요청할까 하다가 설치한 판매점이 근처에 있어서 비데 안쪽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여 수리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기왕이면 거실에도 설치하려고 가격을 물어 봤더니 한 자리 수 만 원짜리로부터 반 맥 만 원 정도 되는 것도 있지만 이 십 만원 조금 더 주면 쓸 만하고 무난하다고 추천하였다.

그러면 그걸 하나 갖고 와서 새로 설치해 주고, 작동이 안 되는 것은 수리해달라며 방문하는 시간을 약속했다.


약속 시간에 대리점 사장님께서 작은 박스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너무 간단한 거 같아서 그게 전부냐고 하였더니 예전처럼 부피가 안 크고 간단하다면서 박스를 해체하여 설치하였다.

잠깐 사이에 설치를 끝냈다.

그리고 음료수를 함께 마시면서 제품 설치하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我) : 우리 안면이 있지요?

피(彼) : 네, 어디서 많이 뵙긴 한 것 같은데 저희들은 하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가물가물합니다.


아(我) : 오래 전에 우리 집에도 설치하셨고, 작년엔가 회사에도 설치하러 오셨었는데 서글서글하고 솔직담백하신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은근슬쩍 허허실실 전법으로 장사를 잘 하실 거 같다고 칭찬을 해 드렸던 것 같은데 좋게 이야기한 것이라 기억이 잘 안 나시는 구요.

피(彼) : 아, 맞습니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아(我) : 아니오, 괜찮습니다. 헌데 요즈음 장사와 시중경기가 어떻습니까?

피(彼) : 장사도, 경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들 겪는 것이고 그런 거 한두 번 겪어보나요 뭐. 다들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我) : 취급하는 제품 판매와 설치는 상당히 오랫동안 하시는 것 같은데 요즈음 어떤가요?

피(彼) : 제품 값이 비쌀 때가 좋았습니다. 한 대를 팔고 설치하면 짭짤했는데 지금은 한 대 팔아 봐야 겨우 돈 만 원 남습니다. 장사꾼 엄살이 아니라 본사에서는 제품 값이 떨어질 때로 다 떨어졌는데 손님들께서 더 내리기를 바라니까 결국은 중간 단계인 대리점들만 쥐어 짜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다른 서비스를 해 드리고 싶어도 엄두도 못 냅니다.


아(我) : 그렇군요. 헌데 돈 만원 남는다는 말씀은 작년이나 올해나 마찬가지인데 그 정도 남아서 어떻게 장사를 하시나요? 무슨 다른 길이 있을 거 같은데요. 뭐 덤핑 물건을 취급한다던가 하는 것 같은......,

피(彼) : 아이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합니까? 하던 일이니 마지 못 해 하는 형편입니다.


아(我) : 헌데 저 안 방 것 말입니다. 식구가 적어서 얼마 쓰지도 않고, 겉보기는 성성해요. 아마도 전기 회로에 문제가 발생하여 작동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저런 것은 아무리 서비스 기간이 지났을지라도 원초적인 하자로 보고 회사 차원에서 수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피(彼) : 오래도 쓰셨습니다. 설치한지 6년이 넘었는데 서비스 한 번 안 받으시고 여태까지 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러시면 저희들은 굶어 죽습니다. 전에처럼 제품 값이 어느 정도 나가고, 이윤도 적정하게 보장된다면 그러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본사나 저희들이나 어렵습니다. 수리비는 회사에서 정한 대로이고, 저희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그대로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신에 수리기사한테 해 드릴 수 있는 다른 서비스는 최대한 해 드리도록 특별히 이르겠습니다.


아(我) : 그런 걸 이겨야 살아남고 회사가 번창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봉사 차원에서 내 돈 들여가며 사업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여 거나 사장님은 대하기가 편하여 장사를 잘 하실 거 같으니 열심히 하셔서 다음에는 또다시 만원 밖에 안 남는다는 불평은 하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피(彼) : 네, 그렇게 이해를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어디를 가도 값을 깎거나 한 가지라도 더 해달라고 부가적으로 요구를 하지 소장님 네처럼 이해하시고 이야기가 통하는 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비록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판매자의 입장과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하는 소비자의 입장인 두 사람의 대화이고, 세상 돌아가고 사람 살아가는 이치대로 중개하는 한 사람의 훈수의 장이지만 허심탄회하고 편안한 대화의 장이었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kimjyykll.kll.co.kr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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