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찾아 들었다.
초등학교 때 부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옛 생각이 날 때면 듣거나 흥얼거리는 “고향의 봄”이나 “오빠 생각” 같은 동요가 여러 곡 있지만 꼬부랑 할머니는 이루러 찾아 듣거나 우연히 들어 본 기억이 없이 잊고 지냈었다.
그런데 오늘 청양 미당 본가(本家)로 벌초를 하러 갔다가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바람에 벌초는 조금 하다 말고 성묘를 하고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모여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그 소리가 제법 구성졌다.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모르는 도심지 아파트에서는 접해 보기 어려운 모습과 소리였다.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형수님과 데보라는 주방에 서서 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뒤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는 가까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식사를 끝내고서는 다과를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한 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형수님께 여쭸다.
동네가 몇 세대 안 돼 조그만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 하나 구경하기 힘드냐고 하였더니 형수님께서 사람이라고는 노인네들 몇몇인데 그나마도 다들 품 파는 일을 하러 가셨다면서 아마 누구네 비닐하우스에서 일들 하고 계실 거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다들 팔십 노인네들로서 옆 집 아줌마도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영권이 엄니는 더 바짝 꼬부라져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무겸이 엄마도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하고, 선화네 엄마와 몇몇만 허리가 안 굽었는데 노상 아프다고들 하면서 앓는다고 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맘이 아팠다.
그 연세 줄에 들었으니 허리가 곳곳하며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만 동네 아줌마들은 젊어서 가난과 싸우느라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맘이 아팠고, 당당한 사오십 대 시골 엄마들로서 지칠 줄 모르고 억척스럽게 일을 하던 아줌마들이 벌써 팔십대 줄의 꼬부랑 할머니들이라는 것이 슬펐다.
또한 이제는 다들 살만 하시어 그 연세에 일을 안 하셔도 되련만 일하는 것이 몸에 배고, 푼돈이라도 모아 자식들한테 주는 즐거움으로 꼬부랑 할머니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젊은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닐하우스 일들을 하신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큰 사랑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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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