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있어서 오른다.
어느 산 사람의 말이다.
빤히 보이는 나지막한 성당 뒷동산인 갈마산(葛馬山)도 제대로 못 오르면서 히말리아나 안데스 산맥의 트래킹 프로를 즐겨보고 별로 해박하지 않은 지식으로 의견개진만 할 줄 아는 김(金) 선생한테는 안 어울리는 말이다.
물이 있어 간다.
어느 물개의 말이다.
헤엄이라고는 마구잡이 개헤엄이나 개구리헤엄 약간 칠 줄 알면서 물 조심을 하라는 갓난이 엄니의 주의사항을 귀이 못에 박히도록 듣고 살아온 김(金)작가로서 뭐가 톡 삐지는 메이커 수영복을 입고 물에 뛰어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술이 있어 마신다.
어느 주공(酒公)의 말이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아직도 한가락하며 즐겨하는 미당(美堂) 선생한테는 가장 근접한 말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술은 술인지라 하고 못 하는 것은 운명적인 것이지만 생각하고 함께 하며 낭만이 절절 넘쳐흐르는 것은 다 그만한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땅이 있어 심는다는 귀촌(歸村)의 말은 어떨까?
순박한 농심(農心)이다.
또한 애절한 세상풍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집 주변에 과일 나무 몇 그루 심고, 텃밭에 갖가지 야채와 양념거리를 심어 자연을 관조하며 소일하는 여유 만만한 인생이라면 몰라도 대규모 영농을 안 하면 농사를 지어서 기 십 만원 소출을 내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열악한 현실을 몸소 체험하거나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서글픈 일이다.
완전한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형태로 처가 동네로 귀촌한 논산(論山)의 임(林) 비오 씨 댁을 방문했다.
본 지도 오래 됐고, 인터넷으로 하는 구직활동에 대한 것도 상의할 겸 겸사겸사해서 간 것이었다.
완연한 농부의 집과 살림은 아니었으나 2년여가 지나자 그에 버금가는 형태로 자리잡아가면서 살림살이와 농사와 관련된 것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이 농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빨래 줄에 걸어 놓은 긴팔 셔츠를 보니 밤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내가 그를 만지면서 “얼래. 그래도 제법 일한 티가 나는데. 좋던 안 좋던 땅이 있고, 많던 적던 농작물 소출이 나오는데 그를 마다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너무 욕심 부리고 일하다가는 탈이 나니 등에 땀이 날 정도만 하는 것에 좋을 것 같네” 라고 하면서 중얼거렸더니 요세피나 씨가 사실이 그렇다면서 말씀하셨다.
“수양 아빠, 말씀마세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땅이 노는데, 심은 땅에 풀이 무성한데, 몇 발자국 앞에 밤이 벌겋게 보이는데 그냥 돌아설 수는 없고, 하나하나 뒤돌아다보자니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일이 그치질 않아요. 그게 시골살림이에요. 그런 살림도 팔자지 아무나 못 하는 거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는데 직접 눈으로 안 봐도 뻔했다.
그게 바로 농심이라는 생각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 없었다” 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농사지었다면서 마늘, 파, 밤을 한 보따리씩 주어 넷이서 들고 나오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지 않은 사과와 배 과수원에서 초로의 남녀가 일을 하고 있었다.
능률이 안 나는지 일하다 말고 일어서서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샛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세피나씨가 저 양반들 부부는 대전이 집인데 얼마 전에 O억을 들여 과수원을 구입하여 허구한 날 저렇게 와서 일을 하건만 별로 재미있어 하는 표정은 아니라고 속삭이듯이 하셨다.
나도 저 크기의 과수원이라면 남들 하는 대로 할 일은 다 해야 할 텐데 공들인 만큼 소출을 내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하였더니 비오 씨가 과수원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농사가 그런 실정이라고 했다.
땅이 있으니 뭔가는 심는 것이다.
심었으면 많든 적든 소출이 있으니 거둬들이는 것이다.
그를 돈으로 계산하면 수익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간섭받을 것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가장 속 편한 것이 농사라고 하지만 노력을 한 만큼의 대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시골 농촌 살림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갖고 온 밤을 삶아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 뒷면에는 그런 수고와 고마움이 있는 것인데 어찌 농사일에서만 그럴까?
작은 것에도 늘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맘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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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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