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과 술 한 잔은 피상적으로 볼 때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심미안(審美眼)적으로 볼 때는 많은 차이가 있다.
천양지차다.
한 잔 술에 만감이 교차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술 한 잔이 없어 만사가 일탈되는 경우도 있다.
말(言)의 유희(遊戱)다.
동전의 양면성과도 비슷한 것이다.
즉, 말 한 마디에 천 양 빚을 갚는다(일언천금:一言千金)는 것과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교훈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미당(美堂)의 추석(秋夕)은 어떠하였는가?
마지막 가시는 길 추울세라 머리에는 모자를 쓰시고, 손에는 덮개를 하시고, 발에는 버선을 신겨드리던 아버지와 엄니 생각에 눈물 흘리는 날이었다.
전통은 무너지고 있다.
어떻게든 간직해야 할 의무가 있고 필요가 있지만 그게 안 돼 더 서럽다.
제사 형식도 분위기도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변현된 틀은 조만간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잔을 눈여겨보지 않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 잔 술이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으로 나누는 한 잔 술에 먼저 가신 조상님들을 기리고 가족들끼리의 사랑을 나누는 것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음은 술 한 잔이다.
재회(再會)의 기쁨은 사라진지 오래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고향의 이웃들이나 본향의 친척들을 만나던 명절은 옛이야기다.
만날 수가 없다.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왔는지 동네 어귀와 골목과 집들을 기웃거려 보지만 인기척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 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술 한 잔 없이 큰 죄를 짓고 야반도주하는 남부여대의 처량한 사람들처럼 헐레벌떡 길을 나선다.
그런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인지 고심해야 한 다는 것은 비극적인 현실이다.
전통은 무너지라고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명절 때마다 보는 것은 민생행보다.
OO 깨나 낀다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거기가 살아야 우리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돌아본다.
환한 웃음과 함께 떡볶이를 한 점 집어 먹는 카메라 서포트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전통 시장 살리기에 나선다.
그러나 거기 있는 상인들이나 거기 가는 손님들이나 여태까지 이런 추석은 없었다면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한두 해에 걸챠 보는 모습이 아니다.
세파의 흐름이 그러하다.
다들 그저 그렇게 지낸다.
누구네 는 벌초를 하고 성묘하는 것으로 일찌감치 한가위 차례를 대신하고는 가족들끼리 인천공항을 통하여 멀리 해외로 나갔고, 누구네 는 간략한 교회 추도식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누구네 는 시골의 노인들이 자식들을 찾아 역귀성하여 서울로 가고, 누구네 는 몸져 오늘내일하기 때문에 명절 얘기는 꺼낼 수도 없고, 누구네 는 한 밤중 아니면 새벽 일찍이 와서 번개같이 제사를 모시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다.
사정들이 다 있기에 이산가족 상봉이다, 음식 장만이다, 농사일 돕기와 수확의 기쁨 나누기다, 액운을 쫓아내는 사물놀이다, 이 산 저산 줄지어 다니는 성묘다......,
그러다가 안면몰수하고, 나중에는 삼촌이나 사촌을 보고도 댁은 뉘시오 하고 인사하는 촌극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을 것 같다.
한 잔 술에 호탕하게 웃기는커녕 술 한 잔 나눌 사람이 없다.
명절이 되면 직접 대면하고 인사를 아니 해도 누가 왔는지 훤히 알도록 동네가 시끌벅적하게 휘젓고 다니며 야단법석 떨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니 쓸쓸하기만 하다.
평상시에는 지독하게 조용하다가도 때가 되면 엄청나게 시끄러운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로서는 명절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얼마나 서러운지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지 다른 세상 이야기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하여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렇게 보이는 내 눈이 사시(斜視)일 수도 있다.
차라리 그렇다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만사(人生萬事)의 전체적인 흐름이 그런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휘영철 밝은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며 넉넉하게 지내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어찌 보면 별 탈 없이 돼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술 한 잔도 없는 일그러진 추석을 추석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나 옛날로 돌아갈래”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좋든 싫든 아들 맘대로 해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아줄 우리 엄니와 아버지는 저렇게 감나무 골에서 안달하는 아들 모습마저도 구여워서 빙그레 내려다보시니 그런저런 생각을 할 줄 알고 볼 줄 아는 아들은 어찌하라고 그러시는 것인지......,
저는 괜찮으니 당신들께서나 하느님 품안에서 평안히 게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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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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