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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명맥

by Aphraates 2014. 10. 11.

대출 선영(先塋)으로 가서 시제(時祭)를 올리고 왔다.

초라한 모습에 맘이 안 좋았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세상인 지금에 와서 거창하게 모셨던 과거의 시제와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간소하게 시제를 올려 14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6대 할아버지 할머니께 여간 죄송스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 문중은 시제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전통 제례대로 푸짐하게 시제를 올리는 문중보다는 못 하다.

그러나 지금 시제를 지내는 곳이 어디 있느나며 문을 닫은 지 오래인 문중이 더 많은 추세로 나가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현 상황에 대해서 내 편한 대로 해석하면서도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반성은 계속된다.

 

시제를 올리고 나서 식사를 하며 앞으로 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종계(大宗契)를 했다.

시제를 존치시킬 것이냐 아니면, 다른 문중들처럼 간소화내지는 다른 방안을 할 것이냐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명쾌한 답이 안 나왔다.

예년에 그랬던 것처럼 잘 되도록 노력해보자는 원론적인 결론만 냈다.

예전처럼 푸짐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 명맥은 유지시키자면서 흩어진 자손들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가자고 했다.

노력해보자고 힘없는 결의를 하긴 했지만 그런 것과 소원해진 지 오래인 지금 세태에서 그런 일을 추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진척된다 해도 잘 될 지 의문이라는 걱정들이셨다.

 

조상님들 공경 잘 못 하고 어른들 뫼시기에 소홀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강조하는 세대들이 있어 미약하나마 그런 대로 시제 같은 전통 가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세대들이 서서히 뒷전으로 물러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 하지만 조상님들과 어른들께 지극정성이든 어른들 밑에서 살아 온 우리들이 다 잘 될 거라는 희망은 버릴 수가 없다.

맘은 안 그러나 직장과 가정에 매인 것만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데 어떻게 조상님들과 어른들을 일일이 챙길 수 있느냐며 대화하기조차도 꺼리는 세대들로 넘어가면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할지라도 할 것은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그럼 뭐가 할 것이 뭐가 안 할 것이냐고 알려달라고 되묻는 형국이니 뿌리 깊은 나무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공자 왈 맹자 왈 할 수도 없다.

 

하산하면서 조상님들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는 기도를 드리고는 뒤돌아보며 “할아버지, 할머니 죄송해요. 핑계 같지만 세태가 그러니 어쩐대요? 후손들도 살기 어려우니 잘 얻어 잡수실 생각은 접으셔야겠어요. 불효를 용서하세요” 라는 궁색한 인사로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큰 행사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간단하게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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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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