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나 철밥통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작금에 정년퇴임(停年退任)보다는 임의 또는 강제적으로 명퇴(名退)나 조퇴(早退)를 포함한 중도하차(中途下車)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은퇴가 됐든 간에 좋게 평가를 하게 된다.
연식이 다 하여 퇴임을 하면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셨으니 쉬시라는 것이고, 한창 일할 나이에 퇴임을 하게 되면 새로운 전기의 계기를 주는 것이라며 제 2의 인생을 가질 기회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좋게 말을 한다.
퇴임하게 된 경위와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그렇게 위로를 해 주는 것은 아름다운 긍휼의 정신이지만 위로를 받는다는 자체가 불쌍히 여겨지고 있다는 증거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엎어 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라고 하듯이 어떤 형태의 퇴임이 됐든 그 것은 곧 삭탈관직당하고 용도폐기된 것이다.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 공인된 입장인 것을 그를 거부하며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다시 뛰쳐나오려고 한다거나 다시 끄집어내려고 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안 맞고 어디에선가는 그 후유증을 낳게 돼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일손이 뒤바뀌는 안타까운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왕성한 활동을 할 때 손을 놔야 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활동을 접어야 할 때 손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일부 예외인 곳도 있고, 일부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호불호를 따질 선택의 여지가 있는 계층에서는 뭐든 할 수만 있다면 하겠다며 나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계층과는 달리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돈이 들어가고,
몸이 피곤하고,
손에 물뭍히는 것을 싫어한다.
공공단체에는 문전성시다.
하겠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 하거나 다른 이유로 인하여 공석(空席)이 많다는 지적과 우려가 크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으니 한자리 낍시다” 하고 애걸복걸하며 나서지만 “그 거는 당신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아니니 자중하시오” 라는 핀잔만 듣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봉사단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안보일 정도로 썰렁하다.
하겠다는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나타나는데 그나마도 입맛에 맞는 일부 자리여서 대부분이 거부당하는 공석이라는 탄식과 시름이 깊다.
“댁이 그 일에 아주 적격이니 한 번 맡아주세요” 라고 애지중지하며 제안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다가 하고 싶은 맘도 굴뚝같지요.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기 바빠서 어렵고, 건강도 허락지 않아 곤란하니 다음 기회에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는 하소연만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어떤 자리는 뭐 먹을 것이 그리 풍부하다고 대드는 사람들이 많고, 어떤 자리는 뭐 덤터기 쓸 일이 그리 많다고 도망가는 사람들 투성인지 조화를 이루지 못 하고 있다.
정반대의 현상이지만 좌로 보나 우로 보나 빈자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고, 그 만큼 일의 진척이 안 된다는 반증인 것이다.
시시비비와 형평성을 논할 형국은 아니다.
그래도 삭탈관직의 모습은 아니올시다 이다.
긴 한 숨이 나온다.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걱정스럽다.
지금 이 이른 새벽 시각의 꿈자리에서에도 어디서는 삭탈관직 문제를 놓고 자리다툼을 하느라 암중모색중이고, 어디에서는 자라 사양 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삭탈관직(削奪官職)은 고전 판이다.
고려-조선 기에 죄를 지은 사람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사판:仕版)에서 이름을 지우는 일을 이르던 말이란다.
현대 판으로 치면 공직자 징계와 같다.
고전 판에 있어서의 관리에 대한 삭탈관직은 현대 판에서의 공직자에 대한 징계의 최상위 단계로 모든 지위와 권한을 박탈하는 “파면” 이상의 가혹한 처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무시무시한 삭탈관직이 여기저기서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으니 현대인들의 정신저긴 스트레스와 신체적인 노고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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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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