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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고색창연

by Aphraates 2014. 10. 20.

군의관으로 있는 라우렌시우 대자(代子)와 레지나 대녀(代女)를 보러 홍천(洪川)에 갔었다.

좋아진 군에서 중견 장교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삭막한 접경 지역에서 아는 사람 없이 크지 않은 임대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이 지금 세대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쓰러운 맘이지만 그런 것을 내색할 것은 아니어서 군 생활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건강하게 잘 하라는 격려를 하였고, 본인들도 객지 생활에 적응하며 싱글벙글하는 것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맘이 놓였다.

 

홍천읍에 있는 아파트에 들러서 기다리고 있는 수산나네 가족과 함께 차 한 잔을 마시고는 홍천군 동쪽 끝 태백산맥 가까이에 있다는 은행나무 숲을 향해 출발했다.

같은 군내(郡內)이기 때문에 조금만 가면 되는 줄 알았더니 80km거리에 길이 막히지도 않는데 1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홍천군이 그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다.

홍천군에서 자랑하는 은행나무 숲은 아내의 병간호를 위하여 귀촌하여 살면서 수천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조성했다는 그 곳은 시유지로서 가을 며칠간만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한다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된 군대처럼 질서정연하게 심은 20여년 생의 은행나무이외는 대체적으로 친자연적이었다.

입구에서 동네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주차장과 토속 먹거리를 비롯한 특산물 판매를 하는 것도 그렇고, 은행나무 숲 경내 길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훨씬 더 정취가 있었다.

다만 은행나무가 다 떨어진 상태여서 작가적 감흥은 덜 한 것이 아쉬웠다.

 

저녁 무렵에는 홍천 인근에 있는 공작산의 수타사(壽陀寺)에 들렀다.

수타사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출입문은 전통 있는 고찰(古刹)임을 알게 했으나 대웅전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은 단청을 봐도 지은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포근한 곳이었는데 사찰 옆에 조성해 놓은 휴양림은 없느니만 못 한 것 같았다.

 

홍천강변 언덕에 있는 까망집에 가서 삼겹살로 만찬을 했다.

고기 양과 질에 비해 값이 저렴한 편이었고,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면서 돼지고기를 먹어봤지만 처음 먹어보는 스타일에 맛도 좋았다.

그 집 가까이에 있는 양짓말이라는 돼지 주물럭 구이 집은 주차 요원이 몇 명이 될 정도로 크고 성업 중이라고 하여 군부데 위주인 시골 읍(邑)에서 그렇게 영업이 잘 되는 것이 특이하다고 하였더니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국도도 좋아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사람들이 나들이 겸 해서 많이 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해줬다.

아파트에 들려 간단한 다과회를 갖고서 우리 부부의 숙소인 강변 주택지에 위치한 화랑 회관으로 갔다.

관할 사단에서 군부대 방문객들을 위하여 운영하는 영빈관인 거 같은데 훌륭한 시설은 아니지만 정결하고 안락했다.

 

 

 

 

아침에는 화랑 회관과 붙어있는 화랑대 성당에 들렸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에서 나와 하고 성당 내를 죽 둘러보았다.

성당에 안 다닐 때 생각하던 성당 모습 그대로였다.

기도가 저절로 되게 만든 조용하고 차분한 성전 내부와 마차가지로 외양도 뽐내려고 꾸미거나 빛을 발하도록 문지를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였다.

수수하고, 묵직하고, 듬직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것이여 변함없는 믿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인도하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만 보고 군대 성당으로서 관리가 잘 안 돼서 그렇다는 무지한 소리를 할지도 모르지만 성당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도 본다며 “맞아, 바로 이 모습이야” 하고 더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갑자기 대전(大田) 집과 비교가 됐다.

성전을 봉헌한지 십년 이 좀 넘었는데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생각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다 달라 수시로 망치질이 된 것이다.

정작 잘 돼야 할 것들은 뒷전으로 밀려 자꾸자꾸 후퇴를 하고 있는데 안 해도 될 것들은 되고 있는 것이다.

집은 집대로 이상하게 되고, 사람은 사람들대로 멀어지거나 떠나가고 있어 뭐라고 하지도 못 하고 속만 상한다.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집은 해가 거듭됨에 따라 현상유지를 위하여 내외적으로 개보수해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도 비슷한 실정이다.

주변 여건이 초창기의 청춘시대와는 많이 달라 지금은 나이든 사람들이 태반의 노년시대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살림살이가 이루어져야 하거늘 이상한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어 침체를 면치 못 하고 있다.

한두 해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러니 나눌 줄 모르는 아둔하다는 사람들이라는 핀잔과 신성불가침을 모독하는 악마라는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묵묵부답으로 살아온 착하고 선한 불쌍한 양들은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긴 시름에 젖어있다.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고 예상했던 육군 화랑대 성당의 포근하고 평안한 모습을 보면서, 군부대지역이라 삭막하고 메마른 곳이라고 여기던 홍천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갈마동 성당과 활력이 떨어지는 충남 남부지역은 각성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수 백 년도 더 된 잘 보존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유럽의 성당처럼은 아니더라도 처음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합당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법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고심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마다, 보는 눈마다 다르다고 해서 아이들 소꿉장난하듯이 시도 때도 없이 망치질이 되어 해괴망측하게 만들어지면 어쩌자는 것인지......, 그럴 여유가 있고, 그런 열정이 있다면 본연의 일과 본래의 모습을 지키는데 쓰면 얼마나 좋을는지......,

그런 머리와 눈이나, 그런 머리와 눈을 외면하는 머리와 눈이나 애처롭기는 매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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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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