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모상대로 살면 받을 상이 많다.
다중포상(多重褒賞)이다.
그와 반대로 살면 내릴 벌이 많다.
가중처벌(加重處罰)이다.
그러니 너희 몸과 맘을 다 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 상황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과 권리이자 선조님들과 후손들의 연좌제일 수도 있다.
어렸을 적부터 많이 특히, 30년 전부터는 밥 먹듯이 보고 들은 말씀이자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날들에도 한결같이 그 말씀을 숭상해야 한다고 반성하고 다짐한다는 것은 그 경지에 이르기에는 한 참 멀었다는 이야기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우리들은 완전한 성인군자가 아니고 불완전한 존재들이니 그런 약점은 감안해주실거라고 가당치 않은 자위(自慰)를 하지만 떳떳하지 못 한 것이야 스스로 인정하는 바가 아니던가 말이다.
거기에다 날이면 날마다 잘 못을 지적받으며 신앙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믿음(信)과 소망(望)과 사랑(愛)이 부족하니 개과천선하라고 혼나고 있으니 그 역시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과제인 것 같다.
나한테만 유달리 더 그런 것인지 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만 유독 심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건건마다 칭찬하는 소리보다는 겹겹이 꾸중하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더 비중이 컸던 것 같다.
청개구리 심보를 갖고 반대로 나가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잘 해 보려고 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인데 마음뿐이라며 주저앉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오늘은 제대로 하지 못 하여 가중 처벌받는 장면을 연상하고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고소함을 느끼는 것도 있어서 이상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불만을 표출하긴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아니니 남 안 되는 꼴을 보고 화장실에 가서 웃는 대죄(大罪)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아의 이유 없는 반항일 수도 있고, 아이들한테는 잘 하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잘 못 하시는 어른들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부리는 장난끼 어린 심통일 수도 있다.
어른들이 층층시하의 웃어른으로부터 듣는 걱정과 질책은 어차피 아이들이 내리 받는 것이어서 가중처벌이 예상되는 대목이지만 잘코뱅이라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고, 들으실 어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들으셔야 한다고 속삭이며 표정 관리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어르신들 보세요.
여기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라고 하면서 그 분들께서 보시거나 마시거나 슬며시 디밀고 싶다.
또, 나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목이 터져라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그 말씀은 죽 이어지는 성경봉독(聖經奉讀)의 과정에서 오늘 다시 보게 된 에제키엘서 34장(이스라엘의 목자들, 좋은 목자, 목자: 심판자, 미래의 왕국)의 말씀이다.
사람과 일을 함부로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오감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거기에서 선악이 구분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 그런 존경스런 양반이 어디 있어?
아이고, 천하에 그런 보기싫은 양반이 어디 있어?
아이고, 그 양반......,
스무 고개 미로 찾기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인지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대 놓고 좋다고 얘기하면 낯간지럽고, 싫다고 얘기하면 얼굴 붉어질 테니 그럴 수는 없을 테고 그렇게 속 끓이고 있다가 화병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맞짱띠면서 화끈하게 확 불어버리고 시원하게 풀어버리면 어때?
소설을 쓰고 있어요.
다중포상과 가중처벌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다만 억하심정으로 중상모략하거나 아부근성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경우가 아니고 그저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태에서 그런 긴 한숨이 나온다면 최선일까 최악일까 하는 결과는 전적으로 본인으로부터 울어나는 것임을 상대방이나 당사자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즈음 한창 뜨겁게 달궈진 sns 문제와도 유사성이 있다.
어찌 보면 심각한 문제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냥 지나치면 나름대로 틀이 잡혀 흘러가는 것이다.
한데 너무 깊은 관심을 갖고 대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 때로는 바윗덩어리처럼 크게 되고, 때로는 모래알만 하게 작아지게 되는 착시현상에 빠져 스스로 심신(心身)을 피곤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역시 소설을 쓰고 있어요.
너무 비약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수북히 쌓인 갈마공원(葛馬公園)의 낙엽을 밟고 온 여운이 남아있어 기분 좋은 해장부터 무슨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야단법석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인지 김(金) 선생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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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