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陳) 후배님이 먹어보라고 감(柿)을 한 박스 줬다.
사는 곳은 감이 많이 나는 주산지인 대둔산 자락의 벌곡이나 완주도 아닌데 웬 감이냐고 하였더니 전에부터 집 앞에 감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딴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생긴 감나무인지 해갈이를 제 멋대로 하여 어느 해는 제법 열리고 어느 해는 거의 안 열리고 하는데 올 해는 조금 열었단다.
감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도 맛은 그 어느 감 못지않아 이 감을 먹어 보면 웬만한 다른 감은 맹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사람도 여러 질이듯이 감도 여러 질일 것이다.
감 이상으로 환영받는 맛있는 감도 있을 것이고, 감이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밋밋한 감도 있을 것이다.
홍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명품 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다.
우연한 기회가 있어 맛있는 홍시를 얻어먹으면 운수대통이라고 좋아라 하는 정도다.
하여 거나 허풍 끼가 있거나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후배님인데 그런 그가 그렇게 호되게 말할 때는 보통 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박스에 든 감을 차에 실어주면서 주의사항도 일러줬다.
연시(軟柹)에서 홍시(紅柿)가 다 된 상태이니 며칠 안에 다 먹든가 아니면, 냉동고에 넣어 얼렸다가 먹어야지 안 그러고 실온이나 냉장에 넣어 두면 감이 상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도 대자님이 감을 한 박스 보내왔고, 겨울에 일용할 양식으로 비축해 둔 것도 한 접 이상이 있는데 좋아하고 맛있다고 한 자리에서 몇 개 씩 먹다가 미후라(mahura.マフラー/배기통) 메워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감 가운데에 박힌 노란 심만 안 먹으면 괜찮다고 하더라며 맘껏 먹어보라고 했다.
트렁크에 감을 싣고 빗길을 달려 몇 군데 돌아서 집에 돌아왔다.
빨리 먹어야 한다는 소리가 생각났다.
감을 꺼내려고 차 트렁크를 열었더니 신 감 냄새가 진동했다.
얼른 감 박스를 봤더니 박스 밑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바로 박스를 열어보니 가장자리에 놓인 감 몇 개가 터져 푹 주저앉아 엉켜 있었다.
죽탱이 눈탱이와 밤탱이, 감탱이라고 하더니 영락없는 그 것이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감인데 먼 길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유랑을 시켰으니 온전할 리가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고, 후배님은 아마도 알아서 조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트렁크에 실어줬을 것이다.
누구를 삼천 만의 호구인 물렁감으로 보나 하는 말이 있듯이 조심스럽게 다루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무관심하여 터질 것이 터져버린 것이다.
감들아 미안타.
네들이야 무슨 잘 못이 있느냐 운전자로서는 점잖은 운전이지만 네들한테는 난폭 운전이었던 걸 모른 이 사람의 불찰이었다.
하지만 당장 들고 올라가서 마나님과 함께 사정없이 맛있게 먹어주마.
조금만 더 부주의하여 힘을 가하면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 감 박스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집에 와서는 이 것 좀 펼쳐보라고 했더니 데보라가 눈이 둥그레지며 조심 좀 하지 그랬는고 하였다.
맛있는 감이고 바로 먹어야 한다는데 우리한 둬 개 씩 먹어보자고 했다.
데보라가 박스에서 더 많이 깨진 놈을 접시에 받쳐 줘 강원도 평창 장터 좌판에서 올챙이국수 마시듯이 후루룩 하고 쪽 빨아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부드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달은 지 자연에서 채취한 꿀을 먹으면 속이 달치듯이 목구멍이 아플 정도로 달았다.
감이 이렇게 달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아 참 신기했다.
데보라도 이런 감은 처음이라면서 선배님이 부탁하면 후배님이 마다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더 있느냐고 슬쩍 연락을 해보면 어떠냐고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기회 되면 한 번 연락해보지 뭐 하고는 물렁감도 물렁감 나름이니 하루에 2개 씩 먹자고 했다.
위령성월(慰靈聖月) 첫날이다.
새벽에 데보라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 연미사(煉missa)를 봉헌하면서 당신들을 포함한 저승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평안한 안식을 주시라고 청했다.
쭈그렁밤도 삼년 간다는 말이 잇는가 하면 땡감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천수를 다하고 물렁감처럼 가신다 해도 이승과 저승의 이별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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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