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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기다림의 미학

by Aphraates 2014. 11. 2.

기다림의 미학.

 

세부적인 각론이 무엇인지를 따질 것 없이 어감이 참 좋다.

감수성이 예민한 세대들한테도 그럴 것 같고, 감수성은 좀 떨어지지만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세대들한테도 그럴 것 같다.

특히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끼를 내재한 사람들한테 그럴 것 같다.

세상을 소란스럽고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작은 아름다움이다.

 

기다림의 미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급하다.

그 사람들은 상종할 것이 아니라며 그대로 두니까 경거망동하는 것이 도를 넘는다.

급기야는 타도의 대상까지 되기에 이르러 “악의 축”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작자들은 닥닥 긁어모아 멀리 무인도로 격리시켰으면 좋겠다.

참으로 악독하고, 인정머리 없고, 무식하다.

남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도 없이 자기들 이익과 안위에 혈안이 돼 있다.

본분을 지키고 상식적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 지는 이미 오래 됐고 천륜과 인륜도 저버렸다.

 

그러다가 입장곤란하면 묵묵부답으로 시간만 가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을 훼손시키고 악용하는 천인공노할 모습이다.

 

너무 분노할 것은 아니다.

결코 불의가 정의를 범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뒤로 밀리는 정의가 앞으로 승한 불의를 물리치는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증명될 것이다.

자기한테는 유리하게, 남한테는 불리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악한 인간의 심보의 한 면이라고 하지만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찌 그리들 악의 축으로 남겨지려고 용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관적일 필요가 없다.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속세에 찌들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만행에 가까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기다림의 미학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 와 가곡 “기다리는 마음”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통한다.

새벽에 그를 열어보고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다림의 미학이면서도 너무 처절한 기다림의 미학으로 연결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전 떠난 외동딸, 생일에 돌아오다”라는 세월호의 희생자 고(故) 황지현 양에 관한 기사였다.

그 기사와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저승의 아이와 이승의 부모가 떠오르면서 “이거는 아니야” 하는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새벽을 가르는 눈물과 외침은 그 것으로 끝이었다.

무기력하게도 뭔가 더 해볼 여력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오로지 이 것 뿐이다.

오늘 연도(煉禱)와 함께 봉헌하는 위령미사에는 친가와 처가 부모님, 종길 형, 조상님들과 저승에 계신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특히, 황양과 같이 불쌍하고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영혼들도 기다림의 미학을 음미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라고 기도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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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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