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아이들은 인형이나 애완(반려) 동물을 좋아한다.
성격이나 발달 장애라고 보기 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고 사랑스런 동물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정상적인 동심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당(美堂) 선생 같은 노땅 그룹의 1950년대 전쟁 세대들도 다를 바 없다.
보드라운 천과 털로 만든 인형은 참 좋았고, 집에서 기르던 소나 개를 팔려고 끌고나가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났다.
갖고 싶은 인형을 가질 형편은 못 되고 ,함께하고 싶은 동물들과 헤어지긴 했어도 그에 대한 감정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였다.
다소 인식의 차이는 있었다.
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하여 깡통을 들과 거리로 나서는 판에 부잣집 아이들이나 갖고 노는 인형에 대한 시선이 고을 리 없었고, 동양과 서양의 다른 식습관에서 비롯된 특정 동물에 대한 식용논쟁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편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어느 정도 트라우마(trauma : 피해망상)도 있었다.
알록달록한 여러 가지 모양의 인형인 꼭두각시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들처럼 철저하게 반공 교육을 받아 온 권위주의 세대들은 그 말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아 달라졌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데올리기(Ideologie : 이념)적 문제는 생명력을 잃어가는 상태다.
인공기나 북한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보이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 낯설지 않지만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런 것을 금기시하면서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 북괴 김일성”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각인돼 있어서였다.
또한 조지 포웰의 음침한 공포 괴담 소설에서 나오는 기분 나쁜 고양이나 묘령의 금발 아가씨가 쓸어안고 빨아가며 기뻐하는 주인장 체격만큼이나 큰 개 같은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양날의 칼 같은 꼭두각시다.
불행하게도 원칙도 소신도 미래도 없는 웃음과 기쁨을 주지 못 하는 부정적인 꼭두각시들이 주변에 종종 나타나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런 상황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반골기질은 생산적이고 효율적이지 못 하다.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고 윗물 없이 아랫물이 존재할 수 없듯이 윗선을 잘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살신성인의 모드라면 몰라도 해바라기성의 예스맨(Yes man : 절대복종자)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것은 반골 이상으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 꼭두각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모른다.
내키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꼭두각시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부류가 됐든 간에 눈물이 가득 찬 커다란 눈을 가진 모습의 피에로(pierrot : 어릿광대), 아바타(avatar:분신), 핀치히터(pinch hitter:대타), 총알받이, 앵무새가 연상케 하는 꼭두각시는 비참한 모습이다.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조금만 방심을 하거나 약간만 시기를 놓치면 철옹성도 무너지는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 될 수 도 있는 것이니 달콤한 꼭두각시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며 희희낙락하다가는 패가망신밖에는 없을 것임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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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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