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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by Aphraates 2015. 2. 12.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는 아파트 현관 입구의 편지함에 들린다.

다분히 습관적이다.

날씨가 좋든 나쁘든, 시간이 급하든 안 급하든, 맨 정신이든 술에 취했든, 혼자든 여럿이든,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어떤 경우가 됐든 간에 안 가리고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면 우편함부터 보거나 열거나 한다.

 

요즈음은 우편함이 쓸쓸하다.

우편물이 귀하신 몸이 됐다.

일상적이 된 sns를 비롯한 인터넷을 통하여 거의 다 이루어지는데다가 활동량에 따라 많고 적어지는 우편물 속성상 은퇴를 하고 보니 그 양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손 편지 같은 예술품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약간의 변형된 모습으로 꾸준하게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있다.

적어진 우편물 대부분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보편적인 홍보물이거나, 특정된 가입 고객 같은 사람들한테 보내는 선별적인 금융 관련 서류이거나, 가톨릭 신문 같은 정기 간행물이거나, 청첩장이나 안내장이다.

한 때는 교통법규 위반이나 주정차 위반을 했다는 벌과금 통지서가 날아오기도 하지만 지금은 준법의 정신이 투철한 성숙한 시민이 되어서 억세게 재수 없는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헛돈은 안 쓴다.

 

우편함이 초라하다.

우편물의 양도 줄고, 그렇게 반가운 것도 아니다.

주인장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편지함도 지겨워 할 정도로 배가 불렀지만 주인장 활동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 편지함도 자연스레 홀쭉해졌고, 꽂혀있는우편물의 중요도도 떨어져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것인 태반이다.

 

함(函)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여러 가지 함이 생각난다.

불전함, 모금함, 결혼함, 예단함, 축하함, 조의함, 기부함, 찬조함, 현금함, 여론함, 수집(수거)함, 응모함, 투표함, 건의함, 조사함, 소원 수리함, 편지함......,

함의 종류가 많다.

오가면서 보이는 함도 많다.

많아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함은 제한적이다.

아파트 현관의 편지함, 결혼식장을 비롯한 축하의 장에서의 축하함, 장례식장에서의 조의함 등을 이용하는 정도인 것 같다.

이 나이에 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하여 갖가지 다른 함을 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쓰이는 함이 자꾸 줄어드는 것인데 “달마야 서울 가자”애서의 불전함과 먼지가 뽀얗게 쌓인 찾아주는 이 없는 모금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제는 지인이 사무실에 다녀오더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찾아주는 이 없고, 봐 주는 눈길도 부실한 초라한 함이 놓여있는데 갖다 놓지를 말든지 갖다 놨으면 배를 채우게 하든지 할 것이지 그게 뭐냐고 하면서 수준이 그 정밖에 안 되느냐며 속상해 했다.

관심을 가질 처지도, 조언을 할 입장도 아니어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안 들으니 만 못 했다.

 

점잖고 호소력 있는 내레이션의 아프리카 난민 아동 구호기금 홍보 광고가 강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얼마나 실적이 있는지 생각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천주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한 끼 100원 나눔 운동”과 비슷한 일종의 모금 활동인데 신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 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에 조금씩 하던 것도 정리를 해야 할 판이어서 만족스럽게 모금 활동에 참여하지 못 하는 것이 맘이 안 좋은데 비슷비슷한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모금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호응과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 함과 그를 다루는 사람이나 봐야겠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직선으로 보이는 헌 옷 수거함이다.

주기적으로 트럭을 끌고 와서 헌 수거함을 열고 헌옷들을 꺼내가는 젊은 사람이 오늘도 나타났다.

부대에 담거나 꾸러미로 묶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트럭 카고에 실으면서 중간 중간 멈칫거리면서 옷가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아마 간단한 세탁이나 수선만 하면 바로 쓸 만한 것이라 생각하고 한 쪽 켠으로 싣느라고 그러는 것 같다.

남들이 입다 버린 헌옷들을 수거해다가 저울로 달아서 팔아봐야 얼마의 수익을 올리는 것인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다.

폐기물 수거함이 시집 장가가는 귀한 함은 아니어도 그를 밥먹여주는 함이니 한 푼이라도 벌이가 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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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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