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에 프란치스코 대자 님이 장모상을 당하셨다.
데보라와 함께 문상하였다.
망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기도드렸다.
아울러 대자님 내외를 비롯한 유족을 위로하였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테니 잘 모시고 용기를 갖고 이겨내자 했다.
대화 중에 요즈음 장례 절차가 참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맘이 아팠다.
원래 삼일장으로 계획했는데 행정적인 절차가 늦어져 실질적으로는 오일장을 치르게 됐다면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셨다.
놀라웠지만 이해가 됐다.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급증하여 장례 절차가 지연되는 것을 본인이 당하고 보니 황당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셨다.
갑자기 13579의 홀수 문화가 떠올랐다.
어느 블로거가 그에 관해 올린 글을 보니 공감이 갔다.
친절하고도 박식한 글이었다.
13579를 외치던 때도 떠올랐다.
그런 객기는 안 부려도 좋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가 그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그때가 그리우면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는 것인데 사실이 그렇다.
1은 좀 적고, 2는 적당하지만 짝수라서 싫고, 3이 딱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면 소주 한 병은 적고, 두 병이 좋은데 그는 짝수라서 싫고, 결국 세 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이미 도를 넘어 통제가 안 돼 술이 술을 먹는 지경에 이르러 밤이슬 맞고 쏴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 이튿날 죽어날 거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곧 죽어도 짹이라고 하듯이 부어라 마셔라 하던 그때 그 시절이었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도 않고 만약에 그랬다가는 꼴깍할 것이다.
나쁘지 않은 홀수 문화이긴 한데 그 문화 창달의 대열에서 밀려나는 것이 마음 한구석으로는 허전하다.
운명적이었으니 좋은 인연이다.
근근했으나 아름다운 날들이다.
약하고 여렸으나 강인한 친구들이다.
살아보니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면서 칠갑산 자락과 학바위 냇가를 그리워하는 서울 쌍문동(?) 댁의 카톡 대화를 보니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물가물한 60년의 세월이 그리움과 추억으로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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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