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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아이쇼핑이라도

by Aphraates 2022. 4. 4.

문화동 사람들만남을 하고 귀가하는 길에 갤러리아 백화점을 경유했다.

지하 식품관을 거쳐 1층 명품 코너를 통과했다.

쇼핑하거나 볼일이 있어서가 들린 것이 아니다.

향촌에서 가장 가까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다 보니 길이 그리됐다.

전에도 가끔 그런 적이 있다.

그 경로가 첩경이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가 어떤지 구경도 할 겸 해서 일부러 백화점 안을 통해 귀가했다.

이번에는 지난날이 생각도 나고, 대대적인 외부 리모델링을 한데다가 수시로 내부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

 

백화점 안을 지난 것은 멀지 않은 길에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빠져나오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세에 눌려 위축도 됐다.

걷는 자세를 꼿꼿이 했다.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리번거리거나 몸을 배배 꼬지도 않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하고 품위 있는 매장과 있어 보여 시쳇말로 때깔이 좋아 보이는 고객들한테 기가 눌려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군대 사열하듯이 빳빳하고 꼬장꼬장하는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출입문을 나서 백화점 주차장 쪽으로 걸어 집으로 오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우습고도 당황스러웠다.

물건을 사든 놀러 가든 동네에 있는 백화점에 가는 것은 향촌 주민의 권리이자 혜택인데 왜 그렇게 몸 둘 바를 모르고 촌놈 노릇을 했는지 이상했다.

 

그러나 주춤하고 망설인 것도 잠시였다.

어찌해야 할 것인지 바로 답이 나왔다.

아이 쇼핑(Eye Shopping/윈도쇼핑Window Shopping, 눈요기)을 하더라도 백화점에 종종 가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충동구매를 할 것도 아니고, 안목을 높인다며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다니면서 허세를 떨 것도 아니고, 새로운 패션과 유행 감각을 익힐 것도 아니고, 뭘 사거나 즐길 상황도 아니지만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 마트에 가더라도 머리 단장과 옷매무새를 다듬던 데보라한테 동네 백화점 잠깐 다녀오는데 뭘 그렇게 요란스러우냐고 했더니 두부 한 모를 사더라도 격에 맞는 쇼핑에 격에 맞는 고객 노릇을 하는 것은 자신과 이웃에 대한 예의라고 하던 데보라 말이 떠올랐다.

맞는 얘기였다.

백화점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 가더라도 단정해야 한다.

어렸을 적에 조회 시간에 선생님들한테서 듣던 훈계가 있다.

땟국물 질질 흐르고 콧물 훑어 소매 반들반들한 옷에 세수도 안 하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한테 까마귀가 친구 하자고 하겠다면서 비싼 새 옷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빨고 기워서 항상 용모단정하게 다녀야 맘도 밝아지고 공부도 잘된다는 것이었다.

허례허식이 아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몸과 맘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얼굴은 너절한 페인트칠이요, 머리는 헝클어진 수세미요, 옷은 무르팍 튀어나온 운동복이오, 신은 질질 끄는 실내화요, 오른손에는 통화가 그칠 줄 모르는 스마트 폰이요, 왼손에는 구멍 숭숭 난 검은 비닐봉지요, 걸음걸이는 배 터진 O 기어가거나 X마려운 강아지처럼 허둥대는 거요......, 그런 모습이라면 곤란하다.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다.

아이쇼핑처럼 한가롭게 즐길 상황은 넘어선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농이 일정 통하는 듯하다.

식수 신청, 하기동 회동, 칠갑산 모임 어렌지, 천안과 부산 연락 미 업무협의, 선사병원 진료, 온통대전 카드 발급, 한식 차례 협의......, 그렇지 않아도 사순시기에 지켜야 할 의무와 누려야 할 권리가 산적해 있는데 자발적이 아니고 임의적인 과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우성의 비명도 즐거운 비명도 아니어서 순차적으로 하면 큰 무리가 없는 한 해결될 문제들인데 그래도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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