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쉽다.
푸릇푸릇하고 가슴 설레는 이성 관계를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코를 뚫는 소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선행이나 악행을 할 때도 쓰는 표현일 수도 있고, 난제가 첩첩산중일지라도 불굴의 의지로 헤쳐 나가는 것을 나타날 때 사용할 수도 있다.
그 여러 가지 중에서 오늘은 오월의 시작이자 노동절인 근로자의 날이고, 성모성월(聖母聖月)이 시작하는 날이고, 문(文) 정부에서 윤(尹) 정부로 바뀌는 달에 하는 첫 빠따 이야기다.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드러낸다.
고전 판으로 얘기하면 곤장이고, 현대 판으로는 말하면 빠따를 맞기 위한 자세다.
바닥을 보고 엎드린 엉덩이의 주인은 하나, 둘, 셋......, 하고 목이 터질 듯이 큰소리로 복창하면서 물고를 당한다.
맞기 전에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떤다.
한 대를 맞으면 하늘의 별들이 탁탁 튀며 엉덩이에 불이 난다.
두 대를 맞이면서부터는 감각이 무디어지고 체념을 하면서 악에 받쳐 죽일 테면 죽이고 어디 맘대로 해보라고 악에 받친 저주를 한다.
그다음부터는 인사불성이 되어 곤장 몇 대면 결딴나고, 빠따 몇 대면 지탱하던 팔뚝도 힘을 잃고 엎드려뻗쳐 자세가 죽사발이 된다.
경험과 만성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쇠잔하게 되어 굴욕의 항복을 외치며 혼수상태 내지는 기절로 된다.
빠따는 즉흥적이 아니고 계획적이다.
대표적으로 첫 빠따와 줄 빠따가 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억울하게 덩달아 싸잡아서 연대로 맞는 일도 있고, 잘못하여 책임 추궁을 당해 단독으로 맞는 일도 있다.
시범 사례의 단골로 빠따를 맞기도 한다.
안면몰수하고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빠따에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다.
전(電)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변혁기에 늘 있는 단골손님이자 첫 빠따다.
좋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 하지만 현실은 살벌하다.
여차하면 몰아세우는 개혁에 휘청거린다.
첫 빠따를 지나 줄 빠따로 동네북이 된다.
맏형으로서 겪어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다.
맏형을 때려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면 올망졸망한 다른 아우들은 그동안 견지하던 정체성도 잊은 채로 알아서 설설 긴다.
백가쟁명 시대가 연상된다.
전은 총아받이 역할을 꿋꿋하게 해내야 한다.
어려운 것은 너희가 다 알아서 똘똘 말아 갖고 가고 좋은 것들일랑 우리에게로 넘기라고 하면 순종해야 한다.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키는 구도다.
먹 잘게 있으면 벌떼처럼 대들고, 먹 잘게 없으면 누구시냐고 물으면서 안면도 안 트려고 한다.
전은 심심풀이 땅콩이다.
걸핏하면 근본 틀이 흔들린다.
보는 이의 필요에 따라 숲을 보기도 하고, 나무를 보기도 한다.
입시제도나 부동산 문제처럼 모범답안을 낼 수 없는데도 칼을 들이댄다.
해볼 거 다 해봤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왔는데 이번에도 다른 방법으로 수술을 한다는 것이다.
수술은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했다는 진단이 조금만 지나면 오진으로 되고, 요로 결석인데 맹장이라며 칼 들고 대든다.
원자력이 뭐고, 화석연료 발전이 어떻고, 신재생 에너지가 뭔지 심도 있어 파악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나와야지 또다시 탁상공론(卓上空論)처럼 다가온다면 문제가 문제를 만드는 격이 될 것이다.
매는 먼저 맞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될 것은 제대로 안 되는데 시범 사례로 만들어 두들겨 팬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나가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길인데 뚝딱하면 뭐든지 나오는 요술 방망이처럼 흔들어댄다.
전이 다시 아프다.
또다시 수술대에 올려졌다.
미당 선생 현직 시에 몇 번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했던 일들인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니 안타깝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전의 빠따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과제인 것 같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