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년생분들.
30년 전에 갈마동 성당에서 만났을 때는 새 신랑 각시라고 불렸다.
미당 선생은 그보다는 쬐끔 윗세대로 연세 많으신 노년과 아직 새파란 청년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그 아우님들이 지금은 환갑이 넘었다.
현업 일선에서 뛰는 아우님들도 있으나 많은 분이 주말농장을 돌보는 뒷방 늙은이로 자리를 잡고 있다.
성당에서는 어른 대접을 못 받고 심부름을 하는 수준이다.
성당도 그만큼 늙었다는 이야기다.
순환이 잘 안 된다.
순환돼도 그 물에 그물로 된다.
괄괄한 아우님들이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며 이제는 어른으로 인정 좀 해주셔야 하지 않느냐며 민원을 제기하면 웃음바다다.
아직 멀었는데 청춘이 그 무슨 망발이냐며 좀 더 졸병 생활을 하라고 점잖게 충고를 듣는다.
한 세대 30년이 넘도록 만년 연하의 사람들로 남아 행세를 하지 못하고 손발을 바삐 움직여야 하니 사회적으로 말하면 심각한 인사 적체 현상이다.
앞의 이야기는 먼 곳에서 들려온 소리도 아니고, 허구도 아니다.
오늘 갈마동 성당에서 공동체 미사 후 공지 시간에 나온 일화다.
자신을 낮추며 자축하기도 했다.
신부님께서 파견 성가를 하기 전에 어버이날 노래를 다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셨다.
당신 부모님도 이미 안 계시고, 오늘 미사에 나오신 분들 부모님께서는 대부분 안 계실 것이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으니 어버이 은혜에 감사드리며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으로서 보속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부르자 하신 것이다.
성가대 선창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노랫소리가 팡파르 울리듯이 경쾌하거나 웅장하진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에 오늘의 우리를 있게까지 해주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고, 사랑이 얼마나 컸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살아생전에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서린 것이다.
또한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런 고생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열심히 사셨던 존경스러움과 끝없는 사랑이 되살아나는 것이어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신 것이다.
숙연한 분위기는 성당 현관에서 털어버렸다.
신부님께 인사드리는데 지하를 가르치시며 나눔의 방에서 어르신들 음식 대접하는데 함께 가자고 하셨다.
반색 대신에 질색했다.
고맙다고 인사드리면서 “아직 그럴 군번은 아닙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이내 폭소가 터졌고, 덩달아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부정하고 싶은 절규였다.
그 자리에 능히 참석할 수 있는데 아니라고 부정을 해도, 그럴 자격이 충분하여 권유를 못 이긴 체하고 참석을 한다 해도 고마움보다는 서글픔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여류수(岁月如流水,세월은 유수와 같다)에 세월은 쏜살같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나는 아니라고 발버둥을 쳐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좀 버텨봐야지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누구인들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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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