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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안 먹으면 그만이었는데

by Aphraates 2022. 5. 26.

술값이 오른다.

고깃값이 오른다.

다 오른다.

안 오르는 것은 봉급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시국에 고통 분담하는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삭감하여 성의를 보이자고 한다.

장사는 전 같지 않다.

남는 거 없이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엄살을 가벼이 여길 상황이 아니다.

잘 안 되고 손님들은 까다로워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밤잠 설치기 일쑤다.

수입은 늘어나지 않는데 씀씀이는 점점 늘어나 상대적으로 살림살이가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쪼그라든다.

 

이거 어찌 해야 하는가.

고민이 안 되거나 위기감을 느끼지 않거나 하면 비정상이다.

그 사람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성인군자이거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바보천치다.

 

이럴 때는 객기를 부려볼 필요도 있다.

근래 없던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설 필요도 있다.

 

그래.

물가가 오르겠다는데, 호주머니가 가벼워지겠다는데 대책 없다.

첩첩산중이고 오리무중이면 무대포와 무시 작전으로 나서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좋아.

오르라고 해.

무섭지 않아.

조금도 걱정할 것 없어.

안 입고 안 먹으면 되잖아.

그동안 많이 입고, 많이 묵었다.

그거 안 입고 안 먹는다고 얼어붙거나 손발 오그라드는 거 아니니 철저하게 외면해 버려.

천주교인이 신앙고백을 할 때 마귀를 끊어버린다고 고백하듯이 당장 끊어버려.

 

그러면 뭐라고 하는 말이 있을 거 아냐.

더 올리던가, 원래보다 더 내리든가 무슨 조치가 있겠지.

그때 가서 끊었던 것을 다시 잇던가 이참에 아예 끝내기로 절교를 하든지 하면 되니 그런 거 갖고 머리 아파할 것 하나도 없어.

 

주당의 일원인 미당 선생의 지론이다.

학고방에서 김치 꼬리에 막걸리 한잔하는 식으로 돈 들어갈 것이 없는 주가(酒家) 습관이다.

싸고 알뜰하게 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거나 귀찮으면 안 하면 된다.

이열치열(以熱治熱)에 이안환안 이아환아(以眼還眼 以牙還牙)이다.

그런 작전과 대응으로 성공을 해 왔다.

정면 대응해서 손해를 보거나 금주를 한 적은 없다.

물가 오르다 내려 항복을 받아내곤 했다.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과 호쾌한 주당의 일원으로 화끈하게 밀어붙여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무대포 작전이나 오기가 다 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수도 있다.

어쭈구리, 어디 한 번 쓴맛 좀 봐라 하고 악화일로로 치닫을 때도 있다.

객기와 고집도 부릴만한 사람이 부릴만할 때 부려야지 주제 파악 못 하고 덤벙대다가는 된통 얻어맞고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게 된다.

 

강한 태풍이 불어온다.

지금은 여력이 적다.

반기를 들 동력이 약하다.

어려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불안해하면서 조심조심해야 한다.

가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통 극복과 분담을 해야 한다.

난제가 무난하게 처리되던 것은 옛날이야기인데 지금도 그러겠지 하고 막연한 희망 사항을 표하고자 한다면 실수하는 거다.

 

이빨 빠지고 발톱 빠지고 수염까지 늘어진 호랑이는 불쌍하고 애처롭다.

내외적으로 많은 것들이 몰려와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대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움츠리고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은 맹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주당 인사말이 쑥 들어갔단다.

그렇게 가볍게 먹어도 가계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물가가 올랐단다.

살인적인 물가라는 아우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단다.

호주머니는 그대로인데 호주머니 밖이 천정부지로 돌변했단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한 것이 많은 우리만 그렇다면 오래 가지 않고 바로 나아지겠지 하면서 약진(躍進)의 활을 당긴다고 하겠지만 어느 나라든 다 그런 형편이라니 심란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경쟁과 공격이 시만 것이 국제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열강의 각축은 각축이고, 동해상으로 쏴대는 대포는 대포고, 흥하자는 것인지 망하자는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이단공단(以短攻短) 판은 판이고,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역설은 역설이고......, 어렵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질지라도 다 우리가 먹어야 할 밥상이니 반갑지 않을지라도 두 손 벌려 환영하는 연습을 더 심도 있이 해야 할 것이다.

연습하고 단련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도 담보되는 것이 세상이니 그를 못 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간에는 없고 비씰 경우 안 먹으면 됐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 찬물이라도 한 사발 들이키고 힘을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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