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길어서 좀 불편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 급속히 자라는 느낌일 것 같은데 더 진전되기 전에 깎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귀밑머리를 잡아보았다.
약간 두텁게 잡혔다.
거울을 보았다.
몸살감기 때문에 가뜩이나 초췌한 모습인데 머리는 부엉 강아지 같다.
어라, 머리 깎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이러지.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잘 자란다는데 그와는 연관이 없을 텐데 주책과 망령이 싸잡아서 들어온 것인지 왜 이러나.
추측이 뭐든 간에 실제는 머리가 길다는 것이다.
남원 내려가기 전에 머리를 깎아야 했다.
남원에 이발소가 없는 것도 아닌데 한 번도 가보질 않았다.
대전은 더 많지만 미당 선생은 오로지 우리 아파트 상가 지하의 향촌 이발소다.
1995년 입주 시부터이니 30년이 다 돼 간다.
주로 당일 1번 타자로 그 이발소에 가면 서로가 잘 알기 때문에 뭘 요구하거나 물어볼 것도 없이 바로 이발에 들어간다.
처음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가윗소리 가물가물하게 들리는 꿈나라고 가 어떤 때는 코고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고는 미안해서 “자꾸 잠이 오네요. 뭐 특별하게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 란 말로 창피스러움을 머리 자르듯이 얄절없이 싹 쓸어버린다.
삭발하고 항의 농성을 한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상대의 변화를 촉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 위하여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는 가운데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며 삭발에 들어간다.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그와 함께 아이고 땜을 하는 동지도 속속 자리를 함께한다.
단식에 들어가기 전 단계의 1차 투쟁이다.
그런 구태의연한 작전 이제는 안 통하니 괜히 몸만 축내지 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보리밥 한 그릇 빵빵하게 때리고 고성방가하며 가두시위를 하는 편이 낫지 다 쓸데없는 짓거리다.
머리 빡빡 밀고 다니다가 방금 강방에서 나온 조폭 새끼인 줄 알고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할 것이다.
그런 진부한 장면을 재현할 여유와 겨를도 없는가 보다.
이번 한 번이며 끝이라는 생각들인가 보다.
막장 인생이다.
졸전도 그런 졸전이 없을 것이다.
짱돌 들고 쌈벌이는 동네 골목길 아이들이 더 낫고, 만나기만 하면 벼슬을 바짝 세우고 대드는 장닭 싸움이 더 볼만하다.
삭발도 삭발 나름이다.
불가의 숭고한 삭발을 기리지는 못할망정 쓰잘디 없는 삭발을 남발하는 것은 수치이자 패착이다.
의미도 효과도 없고, 남들의 눈살을 흐리게 만드는 무모한 삭발을 하는 것은 조상님들 욕되게 하는 불효자다.
나를 위한 삭발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한 삭발이었으면 한다.
머리를 좀 일찍 깎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삭발이 떠올라 횡설수설하게 됐다.
그런 혼돈의 세계도 먼 길을 가는 한 길이므로 묵상 수행의 한 과정으로 여기며 동녘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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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