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트렁크를 가득 채웠다.
폐기된 문서와 도면과 책자 등이다.
이면지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일부만 남기고 갖고 간다.
어디로 가는가.
청양 본가다.
큰 형님은 사랑방 한 모퉁이 솥단지를 걸어 놓고 물을 끓여 사용하시는데 보일러 연료비 절약도 되고, 발생하는 폐기물을 이용하여 온수를 만드시는 것이어서 일석3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막내 동생인 미당 선생도 본가의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대전이고 남원이고 안 가리고 폐지와 박스 등을 모아 놨다가 화물 중간 기착지인 대전 집에 뒀다가 일정량이 쌓이면 청양으로 싣고 간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리 유독 양이 많다.
준공을 앞두고 문서와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그리 된 것이다.
본격적인 준공 서류 작업을 하다보면 더 많은 폐기물이 나올 것이다.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들은 대전 집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청양 본가로 갖고 가 큰 형님이 다른 용도로 요긴하게 쓰시게 해드리려고 한다.
현장 감리단 사무실에서 짐을 싣고 도통동 사택으로 왔다.
데보라 짐도 만만치 않아 승용차 화물 적재를 잘 해야 한다.
화물은 늘 비슷하다.
대형 겨울 옷 가방, 바리바리 싼 세프 작품, 시장과 마트를 다니면서 눈여겨봤다가 세일에 들어갔을 때 사 모은 생활용품과 요리 재료 등이다.
뒷좌석에 차곡차곡 실었다.
후사경을 통해 뒤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만 두고 가득 채웠는데 나와서 보니 중량감에 따라 차가 착 가라앉아 보였다.
출발하면서 점심은 먹었느냐고 물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 간단하게 요기하는 수준인 점심일 것이 뻔한데 대전에 올라갈 준비를 하다보면 그도 못 했을 것 같아 물은 것이다.
대답은 예상한 대로였다.
삼천포에서 사 온 찐빵 하나 덥혀서 따스한 물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힘없어 보이는데 약이라 생각하고 점심을 충분히 먹으라니까 왜 그러냐고 핀잔을 하였더니 그러고 싶지만 잘 안 된다며 노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대로 물었다.
회사에서 오늘 점심은 뭘 드셨나고 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한식 뷔페에 갔는데 별로 생각이 없어 김치하고 조금 먹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실은 춘향 테마파크에 가서 토건 감리단장님과 함께 넷이서 갈치조림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앞으로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몰라 벼락치기로 한 송별회였다.
거짓말을 한 이유도 있다.
점심을 부실하게 든 데보라한테 여산 휴게소에서 지난번에 얘기하던 우렁 된장 정식을 먹어보자고 할 판이었다.
나는 점심에 갈치조림으로 배부르게 잘 먹어 뭘 먹지 못 할 테니 휴게소에 들려 먹고싶어 하던 우렁된장을 당신이나 드소 라고 하면 그러자고 선뜻 대답할 데보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점심이 부실했으니 함께 풍성한 만찬을 제안한 것이었다.
성공이었다.
잘 됐다면서 그러자고 했다.
식당가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우렁된장이 있었다.
하나 값으로 보나 그림으로 보나 우리가 바라던 우렁된장 정식은 아니었다.
안내원한테 혹시 여기 휴게소 다른 데에 우렁된장 정식을 파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면서 우렁 요리는 메뉴판에 있는 것 하나라고 알려줬다.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뭐든 먹게 해줘야 했다.
꿩 대신 닭이라며 혹시 모르니 비빔밥과 우렁 된장을 시켜 나눠 먹자고 하였더니 그러자고 했다.
주문하고 얼마 안 있다가 942번 손님을 호출하여 배식구로 가 둘을 들고 탁자로 왔다.
먼저 우렁된장을 숟가락으로 저어보았다.
실망은 그대로 실망으로 남았다.
콩알만 한 우렁 조각 댓 개에 버섯과 무와 파로 만든 된장국으로 맛도 씁쓸했다.
일반 식당가에서 먹는 보통 된장국보다도 못한 듯했다.
그렇다고 맛없다며 숟가락을 놓진 않았다.
맛있는 우렁된장을 기대하던 사람한테 고춧가루를 뿌릴 순 없었다.
먹을 만하다며 어서 먹으라 권하고는 우렁된장에 비하면 훨씬 실해보이는 비빔밥을 비볐다.
그리고는 밥사발 공기에 가득 떠서 데보라한테 넘겨주며 맛있는데 이것도 먹어보라 했다.
부족한 우렁된장의 감을 조금이라도 보상해주고 싶었다.
나도 된장을 좀 먹어야겠다며 반찬 그릇에 된장을 퍼 밥을 말아서 그런대로 푸짐하게 먹었다.
겉으로는 푸짐했지만 속으로는 내색할 수 없는 고역이었다.
억지 춘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 먹은 것도 아직인데 데보라와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또다시 비빔밥과 우렁된장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희생과 같았다.
차로 돌아와 후식으로 사과 몇 조각을 먹었다.
대전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대전으로 갖고 왔다 갔다 하기를 몇 번 했는지 모를 정도라는 사과 몇 알인데 오늘은 그를 요긴하게 처분하고자 깎아 왔다면서 건넨 사과였다.
사과만이 아니다.
다른 간식거리나 음식들도 싣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둘이 먹다보니 그러 수밖에 없다.
간식을 먹으면서 기대했던 우런된장 정식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잖냐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라면 안 먹었을 텐데 자기와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괜찮았다며 음식보다는 분위기에 취한 기분을 말했다.
그렇게라도 뭐든 먹게 만들었으니 작전은 성공이었다.
휴게소에서 좀 더 나은 우렁된장 정식으로 협조적이었다면 대성공이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는 다음에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질 테니 오늘은 오늘 대로 만족하고 싶다.
강행군은 이어진다.
오늘은 정산에서 본가 삼형제 내외와 조카 그리고, 두 외사촌 형님 내외분들과 함께 예산 작은 형님 생신 축하연을 갖는다.
데보라는 두툼한 생신축하 봉투와 형님들께 골고루 나눠드릴 남원 추어탕 세트를 준비했다.
형제들이 모일 때마다 간단하면사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인데 지난번에는 만원 김부각이고 이번에는 추어탕인데 대표적인 남원 특산품이다.
내일은 갈마동 성당 야외 미사다.
당신을 향한 사랑을 더욱더 견고하게 해 줄 자리가 될 텐데 이어지는 화가 애애할 점심과 소맥폭탄이 기대되면서도 걱정스럽다.
사양치 않고 기꺼이 감내할 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원 내과에서 받아온 몸살감기 약 복용이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과식과 과음으로 훼방을 놓으면 약과 속이 좋다할 리 없을 것이다.
그래도 완급을 조절하고 경중을 가려 소맥폭탄은 몇 순배 돌아야 할 텐데......, 영 거시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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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