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전동 종합 사옥 시절에 가끔 점심 외식을 했다.
밖으로 잘 안 나갔다.
구내식당이 좋았다.
준수하다고 전국적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집밥 같고 가성비도 좋았다.
그래도 손님이 오시거나 전날 한잔 걸치거나 했을 때 가끔 나갔다.
인근 대로변 중리동에 있는 오문창순대 집도 그중의 하나였다.
오문창이 식당 주인 이름인지 아니면, 중구 문창동에 감탄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앞의 오를 빼고 그냥 편하게 문창순대라고 불렀다.
추측하건대 금산 가는 길 보문산 자락 아래 동네인 문창동에서 장사를 시작하여 거기까지 진출하여 대를 이어서 하는 식당이라는 생각도 했다.
상호가 한몫을 톡톡히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성비다.
이득을 조금 줄이고 최상의 식자재를 팡팡 쓰면 방송이나 신문 광고를 안 해도 다 알고 찾아온다.
그 집은 순댓국집으로 유명했다.
손님들이 많았다.
어떤 때는 문밖에서 번호표를 들고 서 있기도 했다.
우리 부서에서는 어쩌다 한 번 갔다.
넥타이 맨 화이트칼라들이 가기에는 좀 그렇다.
또 순댓국을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어서 자주는 안 갔다.
그런데 오늘 문창순대가 다시 떠올랐다.
김문순대가 그를 촉발했다.
추억고 그리움이 가득한 그때 그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직면한 씁쓸한 이야기다.
나 문창순대(문창수인데) 그거 어떻게 됐나요.
네, 지시하신 대로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중간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아주 잘들 하고 있습니다. 건투하세요.
맛있는 순대가 잘 팔리는 장면이다.
나 김문순대 거기 소방서 전화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등성명을 대시오.
네, 누구신데 그러세요. 뭣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려주시면 관련 부서에 이첩도록 하겠습니다.
뭐요, 당신들 직속상관 김문수 OO도 지사란 말입니다. 근무 태도가 뭐 그런지 영 불성실한 거 같습니다. 귀청 후에 조치토록 합니다.
맛없는 순대가 안 팔리는 장면이다.
당사자는 S 상대 경영학과 출신의 최고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
우리 연배는 거기가 어떤 곳인지 다 안다.
전국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어지간히 날고뛴다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 잘하는 학생일지라도 쳐다보기 힘든 학교였다.
천재 중의 천재만 갈 수 있고, 졸업 후에는 누가 채가는지 모르게 선택되어 승승장구하며 우리나라 지도층으로 커 가는 코스였다.
그분은 한 때 대권 주자로서도 나섰었다.
유능하고 촉망받는 인사였다.
헌신적인 노동운동가에, 잘나가는 정치인에, 일 잘하는 행정가에, 신념이 강한 태극기 부대원에......, 그 그것 말고도 인정받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순대와 엮여 불리기나 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 당사자보다도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안타깝고 서글프다.
<OOO "내가 국회의원 세 번 했어"…'김문순대' 2·3탄 또 있었다> 라는 기사가 우리를 어둡게 만든다.
미당 선생 연베인 그분은 이제 또다시 등용되는가 보다.
노동운동가에서 그를 통제하는 관리의 길을 가시는 거 같다.
영광의 길일지, 치욕의 길일지 모르지만 금의환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최고 엘리트 기질을 맘껏 발휘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25일이다.
매월 이날은 YB 34년의 월급날이었다.
반가우면서도 괴로운 날이었다.
두둑하던 봉투가 일거에 명세서만 남은 빈 봉투로 변신하기 때문이었다.
월급날이면 빡빡한 삶의 집안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빈 봉투라도 감사하게 여기며 그 이면에 있는 더 중요한 것들로 위안 삼곤 했다.
순댓국은 호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위안소였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순대 한 접시 시켜놓고 말뚝 고프로 한잔하면 세상 근심 걱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게 찌꺼기로 남아 있으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데 그때가 좋았는지, 지금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감이 무디어졌을지라도 오늘 월급날에 빈 봉투와 문창순대에 감사의 예를 표하고 싶다.
용전동 사옥도 돌아보고, 문창순대에도 들려야겠다.
https://youtu.be/wu8MA1x2gNI?si=ecfzuM42DiycF2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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