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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근수 빼먹지 마라

by Aphraates 2024. 10. 7.

지난 주말에 문화동사람들(M)” 정례 부부 모임이 있었다.

도마동 시장 안에 있는 S 식당에서의 저녁이었다.

식당을 예약했다는 최() 회장님의 문자를 받고 장소를 검색해봤다.

시장 한 복판에 있는 정육점 식당이었다.

누가 개발했는지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의외였고, 이색적이었다.

현직 때부터 이어온 M은 먹자판의 실비 위주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나이도 연만하여 양보다는 질을, 가격보다는 분위기를 우선하는 편이다.

그런데 시장에 있는 고기 집이라니 좀 거시기했다.

지역이 낯설진 않았다.

도마동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금은 주변이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그 때는 사방이 논인데다가 조그마한 도마 시장과 도마 초등학교(현재 서부교육지원청 자리)는 진흙투성이인 1960년대 말 미당 선생의 하숙집이 있던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식당을 물어물어 찾을 것도 없었다.

집 앞의 백화점 정류장에서 정림동을 통해 진잠가는 버스를 타면 바로 찾을 수 있는 집이었다.

211번 버스를 타고 농도원을 지나 도마 1동 주민 센터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조금 걸어 시장 안으로 들어가 식당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홀 테이블에 전부 상이 봐져 있었다.

시간이 되어 손님이 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인 줄 알았는데 기다리며 눈여겨보니 다 예약이 된 테이블이었다.

어느 남자 손님이 몇 명이라면서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종업원이 예약을 안 하고 오시면 어떻게 하느냐며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라고 했다.

겉보기에는 허름한 실비집 같아 보이는데 손님이 그렇게 많은가 싶었는데 금세 좌석이 꽉 차 시끌벅적했다.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님들이 메뉴를 선정하여 주문하는 것도 간단했다.

무슨 암구호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갈 셋과 등 셋입니다하고 주문을 하자 종업원이 정육점 창구 쪽을 향해 “O번 갈세등셋입니다라고 하였고, 정육점에서는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주문한 것이 나와 불판 위에 올려졌다.

 

우리도 따라 했으면 좋았겠지만 잘 모르고 경험이 없어 도움을 받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한테 우리는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갈빗살과 등심을 나누어 시켜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선 테이블 마다 하나씩 갈빗살 셋을 시켜 드셔본 후에 추가로 주문하라고 안내했다.

그렇게 하자면서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렸다.

잘 한다고 해서 왔으니 근수(斤數) 빼먹지 말라라고 하고픈 말을 속에 담고 망설이는 중에 바로 고기가 나왔다.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다.

양이 얼마인지는 가늠이 안 됐다.

안이 볼록한 그릇에 담아왔으면 많아 보이고, 푹 들어간 그릇에 담아왔으면 적어 보일 텐데 어떤 그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먹아 봐야 알 것 같았다.

숯불에 척척 얹어 살짝 구어 내어 소맥폭탄을 안주삼아 폭풍 흡입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만큼 먹었으면 푹 들어가서 바닥이 드러나야 할 텐데 먹어도 먹어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벽의 메뉴판을 보니 8만원 또는 7만원 하는 한 접시가 600g 한 근이었다.

에누리 없는 진짜 한 근을 셋이서 먹으려니 넉넉했던 것이다.

보통 식당에서 1인분은 확인되지 않은 150g 내지 200g이다.

그 정량 1인분도 다 먹기 힘든데 확인된 200g 정량을 먹으려니 풍족했다.

갈빗살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하듯이 기왕 온 김에 다른 것도 먹어보자면서 등심도 하나 시키고, 육사시미도 하나 시켜 배 두드리며 배부르게 먹었다.

 

저녁이 끝나자마자 이내 나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가 없었다.

촌스러운 시장 카페에 들어가 주인장처럼 보이는 수더분한 중년 부인의 안네를 받아 차를 마시며 식당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안 보이지만 가성비 좋은 식당이라는 칭찬이었다.

다음 다른 모임할 때 추천해야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근수 빼먹지 말라고 내심 우려한 것이 머쓱했다.

되네 안 되네 해도 그렇게 몰려오는 손님으로 정신없는 식당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을 하는 사람치고 안 그러길 바라는 사람이 없겠지만 치열한 경쟁력을 뚫고 건재 하는 식당은 뭔가 달라도 다르니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1969년이니......,

이름도 가물가물한 김OO이 필통을 마이크 삼아 폼을 잡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부르던 물어 물어 찾아왔소하고 노래 불렀지......,

교류는 고사하고 생사확인조차도 몇몇 밖에 모르는 소원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문화동 학교 동기동창이......,

 

https://youtu.be/aq4yTzK-JYU?si=MVs6H5UimzTt8e25

임 그리워 - 나훈아 / 1969 (가사) , 다음

 

반세기가 넘어 들어가 본 동네 유천동과 태평동 옆 유등 천과 유등 교 건너의 도마동.

익숙치 않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 통의 식당.

그 세월을 함께 한 인연을 이어가는 문화동 사람들.

고마워요, 선후배 동문 회원님들.

기분 좋아, 데보라와 아프라아테스.

도마동 시장에서 택시를 타는 몸도, 둔산동 향촌 쪽문에서 내려 걷는 발걸음도 가벼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토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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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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