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이다.
조국 간성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고 사기진작을 통하여 철통같은 국방 태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잔칫날이다.
모셔야 할 사람들은 잘 모셨을 것이고, 모심을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잘 모셔졌을 것이다.
미당 선생은 그의 관리의 대상도 피 관리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둘 다 진중하게 경험한 육군 병장 김(金 )병장이 그냥 넘어갈 순 없다.
무심하면 양심 부족에 직무 유기다.
뭔가는 떠올리려고 애를 안 써도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오는 것들이 많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좀 거들어본다.
2025년 국군의 날에는 “하사와 병장”을 초대해 본다.
어디로부터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현안으로 쏴 올려진 것은 사실이다.
쏴 올려졌으니 결말을 지어야 한다.
그러기에는 거치고 해야 할 것들이 많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으나 그래도 할 것은 해야 한다.

하사(下士)와 병장(兵長)
한 계급 차이다.
하사는 용의 꼬리이고 병장은 뱀의 머리 격이다.
그러나 계구우후(鷄口牛後)나 용두사미(龍頭蛇尾)와는 다르다.
병장은 이등병, 일병, 상병 다음의 계급으로 병의 우두머리다.
병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계급이다.
하사관(부사관)은 장교와 병의 중간 계층이다.
계급장이 깡통을 쭈그려 놓은 것 같아 깡통 계급장이라고도 한다.
하사관과 장교의 중간으로 준위도 있긴 하나 소수다.
하사는 원사, 상사, 중사 밑의 가장 아래 끄트머리다.
병과 부사관은 격(格)과 급(級)이 다르다.
신분상으로나 조직상으로나 그렇다.
교육부터가 다르다.
병은 6주간의 훈련소 전반기 교육과 4주의 자대 후반기 합쳐봐야 두 달 남짓하지만 하사관 교육은 6개월(?)인가로 길다.
교과와 교육 내용은 낙엽이 수직으로 떨어진다고 할 정도로 훈련 강도와 기강이 엄격하다.
병은 징병제에 의한 군인 신분으로 3년(현재는 2년) 근무를 마치면 자동으로 제대를 하나 하사관은 다르다.
징병제에 따른 하사도 있지만 모병제에 의한 장기 하사가 많다.
하사관은 직업 군인으로 보면 된다.
단기 하사는 병과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하사 단일 계급으로 제대하지만 말뚝으로 회자하는 장기 하사는 장기간 복무한다.
병과 하사는 한 내무반에서 생활한다.
보직은 다르다.
병은 끝까지 가도 소대장과 선임하사 아래의 분대장이 될 수 없으나 하사는 신참 하사로 와도 분대장 보직이 부여된다.
신참 하사일지라도 고참 병장보다 서열이 높다.
봉급도 차이도 크다.
호봉도 따질 것 없이 병장이면 다 같은 병장 월급을 받는다.
월급이라기보다는 몇 푼 안 되는 푼돈으로서 PX 가서 군짓거라 몇 번 하면 끝이다.
하사 월급은 병과는 격이 다르다.
단기하사는 단일 호봉이나 병보다는 월등하다.
장기 하사는 중사가 되기까지 호봉 체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징집된 병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병사 월급이 몇천 원이라면 하사는 몇만 원대다.
병과 하사는 차이가 나지만 병이 하사관을 부러워하진 않는다.
결과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병은 의무적이고 하사관은 자율적으로 선택된다.
병은 잠시 머물다 가지만 하사관은 계속 남는다.
병은 군대 체질이 될 수가 없었고, 하사관은 좋든 싫든 군대 체질이 된다.
여태까지는 옛날이야기다.
적어도 20세기에는 그랬다.
21세기의 시작인 2000년대부터는 서서히 달라졌다.
변화가 서서히 태동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폭발 상태다.
군사 문화가 급변하며 병영이 요동치고 있단다.
군대 체계와 군인 정신이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장교 월급이 병사 수준 … 병장이 말했다 “소위님, 제가 밥 살게요”>라는 기사 타이틀이 병영 변화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기사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뻔하다.
아직 호불호를 평가할 것은 아니나 변환기에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문제점을 불공장 시절과 연계해 본다.
먼저, 초급 간부 시험 이야기다.
공개경쟁과 경력자 우대의 제한 경쟁이 있었다.
비율은 9:1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에는 무조건 승진이 우선이었다.
조직에서는 일단 승진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봉급을 획기적으로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간부가 되어 전국구로 떠도느니 승진 안 하고 고향에서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 비승진자의 자격지심이었다.
지금은 역전됐단다.
승진도 권위도 싫다고 한단다.
연고지에서 안정적으로 있고 싶어 일부 승진을 기피 현상도 있단다.
수 열 대 일의 경쟁률로 고시라고 하던 간부 시험이 지금은 “이번에는 당신 차례이니 승진 좀 하라” 고 권유할 정도란다.
대장장이면 대장장이로서 먹고 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선진국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흐름이 아닌가 한다.
다음, 특수 기술자 이야기다.
우리나라 송·변전 설비를 전압 계급별로 구분하면 765, 345, 154, 66, 22.9, 22, 6.6kV로 됐다.
765kV 송·변전 설비는 2000년대 초에 건설 및 운용이 시작됐다.
그전에는 345kV급이 최고 전압이었다.
전압별 설비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또렷하다.
기술적으로도 그렇지만 규모와 크기로 면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송전 철탑을 멀리서 보면 그게 그거인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765kV와 154kV 전압 계급 차이는 두 단계 이자만 그 이상이다.
765kV가 헤비급이라면 154kV는 라이트급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밑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보이는 345kV 송전 철탑 전선을 타고 작업하는 근로자를 특수 기술원이라고 한다.
그 분야 인력은행이 빈약하다.
전국적으로 다 긁어모아도 태부족이다.
일에 작업자를 투입하는 게 아니라 작업자를 먼저 확보하고 작업 계획과 시행을 하는 식이다.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그때 그 시절만 해도 관련 요원이 제법 됐다.
당시 보통 기술자가 10만원 내외의 일당을 받을 때 특수 기술자는 40-50만원의 일당을 받았다.
자가용도 귀하던 때인데 그들은 작업 현장으로 갈 때 정장에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일이 끝난 후에 발주처 감독원이나 관리자가 고생했다며 식사나 함께 하자고 초청하면 봉급 얼마나 받는다고 그러시냐면 자기들이 내겠다고 했다.
체면 구기지만 한 달 봉급으로 치면 그들의 1/5 수준 정도였던 불공징 관계자들은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그 분야에도 구인난이 심각하단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담배 사주고, 술 사주고 일당 70만 원이 넘게 줘도 일하겠다는 특수 기술자가 없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든 근로자들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그마저도 한계점에 이르렀단다.
손발에 힘이 떨어져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있는데 어렵지만 해보겠다고 나서는 후계자가 없단다.
취업난이고, 돈이고, 일이고 그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백만금을 줘도 못 하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한단다.
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겠으나 구인난 흐름은 그런 것 같다.
그 사람 다음, 평상 근무외 특수 근무 이야기다.
일근과 교대 근무를 말한다.
일근.
평일은 9시에 출근하여 18시에 퇴근한다.
토요일은 옛날에는 13시까지 근무, 오래전부터는 토요 휴무제다.
공휴일은 출근 안 한다.
정기적이다.
다른 것도 많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거나, 오버타임을 하거나, 휴일에도 출근하거나, 출장을 가면 휴일이나 야간과 관계없이 일하거나, 밀이 밀려 보자기에 싸서 들고 집으로 갖고 가 하거나, 휴가자나 공석자의 일을 대신하거나......, 그런 것들은 비일비재했다.
교대근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뜨나 해가 지나 2교대, 3교대, 4교대로 1년 내내 출퇴근한다.
심지어는 1인 상주나 2인 상주 같은 근무제도 있다.
교대 근무자들은 봉급을 좀 더 받는다.
특별히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주당 근무시간을 초과하고, 야간 근무를 하고, 벽지에서 특수근무제로 근무하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배려를 해준다.
일근과 교대 근무가 그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일근을 원했지 교대 근무를 피했다.
역동성이 떨어지는 단조로운 업무성,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서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성, 밤낮없이 교대해야 하기에 생활 리듬이 깨지는 취약성......, 단점들이 많았다.
그래서 연장자들이나 문제아들의 피신처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었다.
한 마디로 교대 근무는 음지이자 비인기 직무였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단다.
그래도 원초적인 문제가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중구난방이다.
이거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여기까지 왔나.
하사와 병장 이야기하다가 죽 늘어졌다.
안 좋았던 추억이자 환영받지 못할 것들이다.
그래도 좋게 생각해야겠다.
중정(中情)에선 음지에서 양지로 향하는 구호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데 음양조화(陰陽調和) 역시 유효할 것이다.
기왕에 하사와 병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검색하다 보니 그들이 노래한 것이 “목화밭”인 다 인 줄 알았더니 “해남 아가씨”가 있다.
전국적으로 정겨운 곳이 몇몇 군데 있다.
가끔 들리기도 한다.
전라도 해남(진도, 완도), 경상도 삼천포(통영, 남해), 강원도 정선(영월, 평창, 인제)다.
해남에는 70대의 김(金) 프 메순 아가씨, 60대의 김(金) 명 시인 아가씨, 연구원의 추억이 어린 해남 변환소가 있어 해남 아가씨가 그 노래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https://youtu.be/AbhsBkIiYcw?si=u38uTAATMmLPf7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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