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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모른 척 하지

by Aphraates 2025. 10. 12.

 

어제는 대둔산(大屯山)에 다녀왔다.

 

가려고 일부러 간 것은 아니었다.

집에 온종일 있기도 답답하고 해서 점심이나 먹으러 나가자며 나선 것이 가다 보니 대둔산까지 가게 되었다.

복수동을 지나 유등천을 따라 달리는 대둔산 길은 행락객도 차도 적어 드라이브 하기에 좋았다.

반면에 길가의 많은 식당들이 긴 연휴를 유지하고 있는지 문을 닫은 집들이 많아 뭘 먹을만한 곳을 찾지는 못했다.

여차하면 전북 완주 고산에 가 소고기라도 먹을까 하고 계속 천천히 달리다 보니 금산 지방리 교구청 사제관(司祭館)과 진산 성지(聖地)를 금산군과 완주군 군계이자 충청도와 전라도 도계 고개를 지나 대둔산에 이르렀다.

 

대둔산은 한적했다.

인파가 적고 무료 주차장이 널널했다.

대둔산 길을 많이 다녔지만 들어가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각종 관리 및 편의 시설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잘 해드릴 테니 들어오시라는 호객행위를 애써 외면하면서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가는데 뒤통수가 영 가려웠다.

 

매표소 앞으로 가 손을 들고 손가락을 펴 둘이라며 카드를 건넸더니 알아서 경로우대권 두 장을 매표해 줬다.

어른 대접을 하여 푯값도 깎아주는 것까지는 고마운 일이지만 경로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알아서 우대권을 끊어주는 것이 영 서운했다.

그렇다고 얼굴과 행동에 다 표가 나는데 이 사람은 아직 이팔청춘입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간첩이라고 신고당할 일도 아니니 OOO 냉가슴 앓는 것으로 극복해 냈다.

 

올라가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몇 안 됐다.

전망이 가장 좋은 맨 뒷자리에 앉아 미당 선생과 데보라를 모델로 하여 연신 셀카봉을 눌러댔다.

그러자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중년 여인의 케이블카 안내원께서 다가 오셨다.

대둔산과 주변을 알리는 아가씨의 안내 방송과는 별도로 손가락으로 먼 산을 가리키며 약간 왼쪽을 보이는 곳이 무주구천동 덕유산이고, 옆이 남덕유산이고, 약간 오른쪽이 운주 운이람반이람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줘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케이블 종착점에서 확 트인 앞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정상까지는 시간상 가기 어렵고 출렁다리까지는 갈 시간이 돼 많은 사람이 올라갔지만 우리는 좀 무리일 거 같아서 중간에서 유하여 즐기는 쪽을 택했다.

아름답고 상큼한 풍경과 함께 먹는 즉석 호떡 맛이 기가 막혔다.

옆에서는 얘기가 엄마의 자상한 도움을 받아 가며 얼굴에 잔뜩 찍어 바르며 브라보콘을 먹으며 좋아했다.

얘기가 우리가 먹는 호떡에 관심을 보이면 하나 주려고 남겨두고 있었는데 브라보콘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그럴 기미가 전혀 안 보여 얼른 먹어 치웠다.

 

즐길 거 다 즐겼다.

애당초부터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878m 대둔산 마천대 정상까지 오른 등산(?)에는 족적을 남긴 셈이었다.

00분, 20, 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케이블카에 타려고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러다가 다 타지 못하고 다음 것을 타야 하는 걱정을 했는데 걱정도 팔자였다.

타고도 남았다.

내려갈 때는 맨 앞에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안전하게 뭐라도 잡으라는 안내방송을 들어가며 앞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 대 앞 좌석에 앉아있던 4-5십대로 보이는 남녀 중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데보라를 향해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하고 자리를 양보하셨다.

데보라가 당황하여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자 여기 앉으시라며 손을 잡아줘 얼떨결에 앉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미당 선생은 모른 척 했다.

할머니와 같은 짝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데보라만큼 허연 머리는 없어 그렇게 나이 들어보이지는 않을 텐데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에 놓일 것 같아서 그랬다.

내려오면서도 셀카봉을 연시 눌러댔는데 나는 이러기 때문에도 자리를 양보해도 앉을 수 없다고 시위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내려오는 6분여 시간이 영 어색했다.

속으로 그랬다.

고밉다. 그러나 이럴 때는 노부부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모른 척 하지 왜 아는 척 하여 사람을 겸연쩍게 만드는가하는 행복한 아우성을 지르고 싶었다.

 

여유로운 주말에 가다 보니 이르른 대둔산, 참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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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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